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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프랭클린은 오직 2년의 정규교육 밖에 받지 못했다!?
미국 역사에 약간이나마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89)이라는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 역사를 다룰때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온갖 일을 다해보면서 자수성가에 성공한 대표적인 미국인이자 건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인지도 면에서도 웬만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보다 높을 정도이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국 지폐 중 가장 고액권인 100달러 짜리 지폐에는 링컨도, 케네디도, 에디슨도, 마이클 잭슨도 아닌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져 있죠.
이렇게 위인 취급을 받고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이지만, 그의 가정환경은 그렇게까지 유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조사이어 프랭클린(Josiah Franklin)은 농부이자 대장장이였으며, 어머니인 어바이아 폴저(Abiah Folger)는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둘째 부인이자 제분업자이자 교사인 피터 폴저의 딸이었죠. 벤자민은 조사이어와 어바이아 사이에 태어난 8번째 아이이자 조사이어에게 있어서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조사이어는 벤자민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기를 희망했으나, 그럴만한 가정 형편은 되지 못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635년에 지어졌던 보스턴 최초의 공립학교인 보스턴 라틴 스쿨(Boston Latin School)에 진학했지만, 이곳에서 실질적으로 교육받은 기간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졸업도 하지 못했죠. 결국 10살 때 다니던 한교를 그만두고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후에는 인쇄공 도제로 지냈지만 17살에는 가출해서 보스턴을 떠나 필라델피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벤자민은 무일푼으로 시작했지만 어찌어찌 인쇄업자로 성공해 생활에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이 점점 커지고 번창하다가 성숙기에 접어들자 42살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아예 전문 경영인을 고용해 자기 사업을 맡긴 후, 본인은 다른 사업이나 과학 연구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 후 번개가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피뢰침을 발명하고, 방귀 냄새를 향기롭게 만드는 실험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 최초의 소방서도 만들었죠. 또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식민지의 대변인으로서 영국이나 프랑스로 파견되었으며,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 독립선언문>의 파급효과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에서 그치지 않고, 바다 건너 프랑스 대혁명과 전세계의 자연법/인권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죠.
정치 분야와 과학 분야를 따로 따로 떼내어 보아도 세계사 위인들의 대열에 충분히 들어갈 수도 있을 만큼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자민 프랭클린이 받은 정규교육은 고작 2년 정도라는 점은 대단히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분명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책읽는 습관은 계속해서 살아남아 지식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거의 전적으로 독학 위주였기는 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는 높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과 정치적 식견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즉, 꾸준한 책읽기야말로 그가 하버드, 예일, 윌리엄앤메리, 옥스포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왕립학술원 명예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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