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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든 정사든 간에 삼국지를 보면 수많은 인물들이 한 황실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거나 최소한 미련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을 조금만 더 깊게 파고들어가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수많은 인물들이 결코 한나라라고 하는 나라에 대해 충성하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영제나 헌제 같은 한나라 황제 개인에 대해 충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충성심은 오직 "한 황실"을 향해 있을 뿐이라는 걸요.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충성심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죠.

 

 삼국지 인물들은 왜 그렇게 한 황실에 집착했을까?

현 시점에서 역사를 되짚어보면 중국에는 매우 많은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왔습니다. 그 중에는 한나라처럼 수백년 정도 지속된 왕조도 얼마든지 있었죠. 하지만 삼국지의 배경이 된 2세기 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국 역사의 시작이라고 불리우는 하나라, 은나라는 실질적으로 신화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 다음인 주나라는 중국 전역이라기 보다는 오직 황하강 유역 일부를 다스리고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이 바로 온갖 나라들이 난립한 춘추전국시대였고, 그 난세에 종지부를 찍고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것이 바로 진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 진나라는 고작 2대로 멸망하게 된 반면 한나라는 왕망에 의해 일시적으로 단절되기는 했으나 광무제에 의해 또 다시 후한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누가 실권을 쥐고 천하를 뒤흔들건 간에 황제는 오직 유씨만이 해먹을 수 있다는 선입관이었죠.

 

즉, 삼국지 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인류 역사는 오직 중국 역사 뿐이었고, 그 중국 역사 중에서도 통일된 상태의 중국은 오직 유씨 황제에 의해서만 지배받았습니다. 물론 유씨 이외의 황제도 있기야 있었지만 오래 지속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당시 중국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던 도가적 사고방식과 맞물린 결과, 황제는 유씨 일가가 아니면 안된다는 운명론이 성행하게 된 것이었죠. 

이 때문에 화제 이후, 후한 황제들은 실질적으로 허수아비 상태로 전락했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유씨를 내치고 스스로가 황제가 되겠다고 나선 이는 없었으며, 이 덕분에 한나라는 명목상으로나마 계속적으로 유지됩니다. 이후 압도적인 민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황건적들조차 창천이사 황천당립(蒼天已死 黃天當立)이라는 기치를 내걸게 되는데 그 의미는 바로 지금까지 유씨만이 황제가 되어왔던 기존의 세상(푸른 하늘)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누런 하늘)이 열린다는 것이죠. 즉, 세상이 바뀌는 수준의 대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황제=유씨라는 사람들의 선입관은 깨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당대의 세계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원술의 칭제가 지녔던 후폭풍이나 실질적으로 중국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조조가 위왕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사실, 한 황실 재건을 주장하던 유비가 여기저기에서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곡해해 버리고 말죠. 인간의 인식이란 것은 결국 시대에 따라 변화・왜곡되며 이를 후대에 이르러서 압축해서 보는 과정에서 편향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마니까요.

 

정리하자면, 왕조 관점으로 봤을 때 한 황실은 화제 이후로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황제는 비정상적인 속도로 교체당했고 환관이나 외척이 언제나 권력의 중심이었죠. 삼국지 시대가 오기 약 100년 전부터 이미 한 황실은 실질적으로 몰락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삼국지 시대에 이르면 그 환관과 외척이 버티고 있었던 자리를 동탁이나 조조 같은 군벌이 대신 차지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목상으로나마 한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황제=유씨라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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