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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관매직은 항상 나쁜가?
매관매직(賣官賣職)이란, 권력자가 관직을 돈 또는 그에 상응하는 재물을 받고 파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후한 영제가 매관매직을 전격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며 고종도 비자금 마련을 위해 매관매직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그야말로 나라를 좀먹는 대표적인 적폐 of 적폐로 지적되고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대체로 나라가 망조에 접어들 즈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매관매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으로 큽니다. 유능한 인물을 써야할 공직에, 재력 이외에는 최소한의 능력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을 배치하게 되는 제도이니만큼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매관매직에는 오직 단점만이 있을까요? 워낙 이미지가 안좋다보니 부정부패의 대명사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나쁜 매관매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조선시대 때는 돈을 내면 합법적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공명첩 제도가 있었으며, 이때 판매되는 벼슬은 어디까지나 명예직이어서 실권은 없었기 때문에 국가 재정 부담을 경감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폐해가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며, 공명첩 발행으로 인해 부역・군역 대상이 줄어든 것은 둘째치고 재정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백성들에게 공명첩을 강매하는 등의 폐해가 다발했습니다.
또 중근세 유럽에서도 매관매직은 성행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징세 청부업자(Tax Farmer)입니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전통적인 중앙집권적 관료제 사회에서는 국가가 직접 물적・인적 자원을 운용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에 징세 업무 역시 중앙 정부가 직접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봉건제 사회에서는 중앙집권적인 정부 자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가 내외적으로 물적・인적 자원의 재배분이 필요해지면, 시장과 도시의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공백을 메워나가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정부의 손이 닿기 힘든 영역을 민간이 커버한 것이죠.
그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징세업무가 민간에 위탁되는 것 역시 정당화되었죠. 사실 봉건제 정부 입장에서도 징세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것으로 행정적 편의성을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관할 지역의 징세금을 일시불로 먼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효율적이었습니다. 징세 청부업자 입장에서는 징세권을 획득함으로서 온갖 명목으로 백성들을 수탈하여 사익(私益)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호 윈윈 관계였죠. 이러한 매관매직은 비단 행정업무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육군 전투병과 장교직을 거래하는 제도였습니다.
전근대 시기까지만해도 군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항상 부족한 편이었고 일선 장교들이 사비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었습니다. 이것이 차츰 공식 제도화되면서 근대 유럽에서는 돈으로 계급을 사는 행위가 허용된 것입니다. 중앙 정부 입장에서는 상비군 유지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니, 100%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었죠. 게다가 이때까지만 해도 노획이나 약탈이 경우에 따라 허용되었기에, 개인 입장에서도 전리품 획득으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득을 꿈꾸며 장교가 되어 전장의 최전선에 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장교단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원흉이었고 영국군은 크림전쟁에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지요.
그러나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사회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고 조직 구조가 고도해졌고, 계몽주의가 꽃피기 시작하면서 공직자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요구도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근대적인 관료 선발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공무원 임용고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능력주의가 숭상받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벼슬을 사는, 전근대적이면서도 비효율적인 매관매직 제도는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꼬리를 감추게 되지요.
오늘날 우리는 흔히 매관매직 제도를 만악의 근원처럼 인식하며, 정상적인 현대 민주 국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매관매직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지만 그 성격이 약간 닮아있는 제도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부 업무의 민간 수・위탁이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그 포지션이 중근세 유럽의 징세 청부업자와 비슷하죠. 또 계급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몇몇 선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기여입학제도와도 닮아있습니다. 다만 전술한 예들의 경우, 독극물도 그 성분을 분석하고 적시적소에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매관매직의 장점만 추려내고 단점을 제거하여 현대식으로 정변(正變)한 버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아, 그건 그렇고 매관매직 제도는 항상 나빴을까요? 항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나쁜 건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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