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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사람들은 언제나 배고픔에 시달렸을까?

작년을 기점으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국민총소득에서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인데 사상 처음으로 G7 국가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죠. 국민 개개인의 체감경기는 저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수치상 대한민국의 생활수준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은 자명합니다. 역사서 같은 걸 들춰보면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인다" 따위의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는걸 생각하면 적어도 현대 한국인이 굶어 죽는 경우는 상당히 드무니까요. 

다만 우리가 여기서 쉽게 속아넘어가는 함정 중 하나가 바로 옛날 사람들은 항상 기아에 허덕였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주로 기근이 닥쳐오거나 전쟁이 벌어지면 기록에도 그런 묘사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그런 경우에는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평민들의 식탁 사정이 극도로 나빠지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기근이나 전란이 연례행사처럼 매년 꼬박꼬박 발생하는 사건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전근대 시기의 민초들의 삶은 윤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쟁이나 기근같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매끼니 배부를 만큼 충분히는 먹지 못했다" 정도이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전근대 사람들의 태반은 농업에 종사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농사일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인데, 하물며 기계나 발전된 도구의 힘에 의존할 수가 없는 전근대 사회라면 두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고 아이를 낳고 수천 년 이상 대를 이어왔다? 그건 물리법칙을 명백히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물론 전근대 시기의 농업은 대단히 노동집약적이라 그만큼 노동력이 필요해서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쓸만한 노동력이 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데, 지금 당장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농민들이 과연 그런 장기적인 미래 설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조선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는 비판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정말 민초들의 삶이 배고픔의 연속이었다면 이런 기록은 남을래야 남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흰 빵이나 흰 쌀밥을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하지만 호밀 등 잡곡으로 만든 잡곡빵이나 대충 벗겨낸 현미밥, 조를 섞은 조밥 등 잡곡밥은 서민들도 먹을 수는 있었습니다. 애초에 밀로 만드는 흰 빵이나 도정 과정에 높은 비용이 소모되는 흰 쌀밥은 일종의 사치재에 가까웠고, 이는 현대인 입장에서 보면 캐비어나 푸아그라 같은 진미(珍味)에 가까운 포지션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어지간히 부유하지 않은 이상 매일같이 최고급 캐비어나 푸아그라를 먹을 순 없는 것처럼, 너무 비싸서 접할수가 없었던 것이죠.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여기고 마는 결정적인 이유는, 막대한 양의 양곡을 일제에 의해 수탈당한 일제강점기 시절이나 3년간의 전면전으로 인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던 6.25 직후의 아수라장이 아직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기억하는 옛날은 너무도 못먹고 못살았던 것이죠. 그러나 그런 시절은 우리 역사의 일부였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진짜 역사의 대부분은 "매끼니 배부를 만큼 충분히는 먹지 못했다" 정도이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까지는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전근대 시절 평민들은 언제나 배고픔에 시달렸다고 바라보는 편견에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시각으로부터 이 못사는 사람들을 개화시키고 문명화시켜서 잘살게 해주어야한다는 백인의 의무가 태어나고 말았으며, 그 논리가 바로 서구 열강들이 제국주의와 식민통치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서 절찬리에 악용당했기 때문이었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의미하듯 현대 시점에서도 이 레퍼토리는 "식민지 수혜론"이라는 탈을 쓰고 시대와 배경을 바꾼채 반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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