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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한민족을 가장 많이 괴롭혀온 집단이 어디일까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답은 명확해 보입니다. 임진왜란으로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데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국권까지 침탈했던 일본이죠. 그렇다면 두번째로 많이 괴롭혀왔던 존재는 누굴까요? 흔히들 중국의 한족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두번째로 한민족을 약탈하고 침략해온 존재는 바로 만주족을 비롯한 동아시아 북방 유목민족들입니다. 이들은 고려와 조선 전기의 북쪽 국경을 지속적으로 약탈해왔으며 특히 이 만주족들은 두 차례나 세력을 크게 일으켰고 그 중 청조 시기때는 중국 전역을 장악하고 중화제국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만주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거론되는 것이 바로 "만주족은 무분별하게 한족 문화를 수용한 끝에 동화당했다" 는 설입니다. 딱 그 말만 놓고 보면 마치 중국을 정복한 만주족들이 중국의 우월한 문화에 매료되어 자신들의 문화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만주족이 한족에 쉽사리 동화되어 버렸다면 한족 우월주의와 사이비 기독교가 융합한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했을 리도 없을 뿐더러, 신해혁명 당시 한족들이 만주족들을 학살하는 사건 역시 벌어질 리가 없죠. 

 

 만주족은 정말 무분별하게 한족 문화를 수용한 끝에 동화당했을까?

사실, 만주족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총칼을 앞세워 한족들에게 변발을 강요하거나 한족과의 결혼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으며 관직에서도 만주족을 우대했습니다. 또 중국 대륙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하기 위해서 각지로 파견한 팔기군들은 기본적으로 일반 한족들과 완전히 분리시켜 생활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화에 동화되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자, 관학을 세워서 만주어를 가르치거나 관리 등용 시험 때도 만주어를 장려하는 시책을 실시했었죠. 이처럼 통념과는 달리 만주족들은 한족과 동화되는 것을 상당히 경계했으며 이러한 노력 덕분에 청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만해도 팔기들은 숫자가 훨씬 많은 일반 한족들에게 흡수당하지 않은 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 금나라나 원나라 패망 시기처럼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문제는 본거지였던 만주 지역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청나라의 만주족들도 바보는 아니었던 지라 유사시를 대비해 만주를 "봉금(封禁)지역"으로 만들고 만주인 외의 다른 민족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만주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중원으로 이주했기에 만주의 인구는 상당히 줄어들어, 만주 지역은 땅은 넓은데 사람은 없는 상황이 되죠. 그런데 19세기 들어서 러시아가 대두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안전한 후방이 되도록 일부러 비워놓은 만주가 갑자기 최전방 지역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히 2차 아편 전쟁이 종결된 시기를 전후로 연해주 및 만주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압박이 한층 더 거세졌고, 1878년 청나라 측은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봉금 정책을 해제하게 됩니다. 이후 중국 본토가 혼란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 많은 한족들이 만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수적우위를 바탕으로 한족이 만주족들을 누르고 만주를 장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퇴로가 차단당한 상황에서 신해혁명이 발발하게 되었고, 한족들의 분노에 노출된 만주족들에게는 그다지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한 만몽독립운동과 같은 움직임은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만주족들 중 대부분은 성씨를 바꿔서 한족 행세를 하거나 아니면 진짜로 동화되는 선택을 하고 말죠. 

현재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으로서 만주족은 존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만주족들이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버리고 한족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내막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당했다는 단편만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들이 무능하거나 어리석었기 때문에 민족을 잃었다고 호도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만주족들도 결코 경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 현 상황에 치닫고 만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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