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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문명의 미래를 예견하는 모아이 섬

모아이 섬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조그마한 화산섬으로 영유권은 칠레가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칠레 본토와 3,510km 정도 떨어져 있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 서쪽으로 1,921km 떨어진 영국령 핏케언 제도일 정도로, 그야말로 절해고도(絶海孤島)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지역이죠. "모아이(Moai)"라고 불리우는 특이한 석상말곤 구경할만한 건 딱히 없는 섬이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 또는 지구 문명 전체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장소일수도 있습니다.

구전 전승 및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모아이 섬에는 대략 1200년경부터 폴리네시아로부터 도래한 이주민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어떤 경로로 모아이 섬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어찌되었든 정착 초기에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외딴 섬이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이 없었을 뿐더러, 원주민들은 어업 뿐만 아니라 모아이 섬에 펼쳐진 넓은 숲에서 수렵 및 채집활동이나 제한적이지만 농업까지 실시하는 등 상당한 발전된 문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아이 섬에서 꽃핀 문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모아이 석상입니다. 원주민들은 종교적・주술적 의미로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으며 그 크기는 보통 3.5미터에 무게 20톤 정도가 일반적이지만, 큰 것은 20미터 길이에 무게가 90톤에 이를 만큼 거대한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아이 석상이 섬 전체에 약 600개 정도 세워져 있으며 제작 방법이나 운송 방법은 아직까지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모아이 섬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모아이 석상들은 1250년에서 1500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또 후기로 갈수록 크기가 커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석상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파괴된 후, 좀 더 거대한 후기 석상을 만들기 위해서 재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나 대략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모아이 석상 건설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그 방법 역시 실전(失傳)됩니다. 이때부터 모아이 섬에는 조인(鳥人) 신앙이 새롭게 등장했는데, 이 시점의 모아이 섬 원주민들은 상당한 규모의 사회변화를 경험하였으며, 학자들은 그 뒷배경에 삼림 고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아이 섬은 야자수가 우거진 숲이 많았지만, 1722년 유럽 탐험가들이 방문했을 때는 이미 숲은 커녕 나무 한그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Collapse)>에서 모아이 석상을 둘러싼 부족간의 내전이 삼림 고갈을 가속화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HUMANKIND)>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섬에 도착한 폴리네시아 쥐들의 왕성한 식욕이 숲의 재성장을 막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쪽이건 간에 인간의 도래라는 인위적인 요인 탓에 모아이 섬의 삼림이 고갈되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며, 그 폐해로 인해 원주민들은 모아이 석상 제조는 커녕 바다로 나아갈 카누조차 만들 수 없게 되었죠. 

이때 발생한 사회변화가 과연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닌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합니다.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것처럼 섬의 자원과 모아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을 수도 있으며, 브레흐만이 논하는 것처럼 나무가 없어져도 경작지는 늘어났으니 원주민들에겐 큰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딱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삼림 고갈을 기점으로 모아이 섬의 원주민들은 모아이 석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자력으로는 외부 세계에조차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모아이 섬의 원주민들은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힌 폐쇄된 공간에 살고 있었지만, 현생 인류 역시 일종의 닫힌 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기술력으로는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 도달하는 것만도 최소 50년 이상 소모되며,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차원 도약이나 웜홀처럼 SF에 나올법한 초광속 항해수단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전 우주에서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문제는 과학만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무력화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나 인류 역사 그 자체가 말해주듯 기술 발전 속도는 언제나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지도, 일정하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하방압력까지 받는다는 점입니다. 즉, 먼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초광속 항행수단을 개발해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태양계 수준을 넘지 못하고 부존 자원이 모두 고갈되어 지금보다도 훨씬 못한 문명 수준에서 만족하고 지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경우에는 운석 충돌이나 슈퍼플레어 같은 전지구적인 재앙이 발생하면, 이에 대응하지 못한채 인류는 멸종할 수밖에 없죠. 아니면 거대화된 태양에 의해 서서히 말라죽게 되던가요. 

하지만 모아이 섬의 교훈을 살려,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 전체의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우리 후손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남겨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는 인류가 맞게 될 필연적인 종말을 조금이라도 더 유예하거나, 아니면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후손들 앞에게 얼마나 떳떳한 조상일 수 있는지는, 바로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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