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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기의 삼성 전자
「삼성」은 초대 회장인 이병철(李秉喆, Lee Byung-chul)에 의해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라는 이름으로 창업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부동산 사업을 제외하고는 견실 운영을 지켜왔고, 1953년에는 「제일제당(CheilJedang Corporation)」을, 1954년에는 「제일모직(Cheil Industries)」을 설립하며 사세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1968년에 이르러서, 전자산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서울과 수도권, 부산 및 일부 동남권이 주 시청권으로 하는 「동양방송(Tongyang Broadcasting Company)」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결정은 다분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취급하는 전자 제품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었습니다.
이때 삼성은 일본의 「산요전기(三洋電機, SANYO Electric)」와 합작을 통해 「삼성산요전기(三星三洋電機, Samsung-Sanyo Electronics)」를 1969년 설립하였습니다. 산요전기는 당시 한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성과의 합작에 동의하였는데, 삼성산요전기가 인허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기존의 국내 전자제품 업체들의 강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이 때, 정부는 생산되는 제품을 전량 수출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성에게 허가를 주었습니다. 당연히 산요측은 이에 반발했으며, 합자 회사의 설립 자체가 백지화될 사태에까지 처했지만, 결론적으로 공장 규모를 대규모로 축소하고, 생산권과 판매권을 산요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삼성산요전기」는 설립됩니다.
설립 당시까지만해도, 삼성의 전자제품 사업은 대단히 리스크가 컸습니다. 생산제품의 전량수출이 허가의 전제였으며, 무엇보다도 삼성은 전자제품 제조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수출을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 통용될 정도의 품질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창업 초기부터 철저한 코스트 다운과 품질 관리 활동에 사활을 걸게 됩니다. (단, 설립 당시에는 생산제품의 전량수출을 원칙으로 했으나 70년도 말부터는 일부 국내 판매도 허가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합작관계였던 산요전기로부터 기술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70년 1월에는 「일본 전기(日本電気, NEC)」와도 합작 회사를 설립하거나, 일본 「카시오 계산기(カシオ計算機, Casio Computer)」와 계산기 기술 도입 계약(1971년 5월)을 체결하였고, 1973년에는 미국 「Corning」 와 공동으로 「Samsung Corning」을 설립하여, 브라운관용 TV용 부품 생산을 개시하기도 합니다. 기술 도입을 위해 다른 기업들과 접촉하는 이러한 삼성의 행보는, 산요와의 마찰을 발생시켰습니다. 산요전기도 한국 시장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나름대로, 「한일 전기(Hanil Electric)」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자사의 상표를 부착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를 한국 시장에 진출시키는 등 맞바람을 피운 결과, 1977년 삼성측이 「삼성산요전기」를 인수 합병하는 것으로, 양사의 관계는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기술 도입 및 코스트 다운, 품질 관리 노력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품질 향상 정책에 있어, 삼성전자가 모범사례로 꼽힐 정도로, 삼성전자는 1970년대 한국 최고 수준의 품질 수준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오일 쇼크 당시에도, 국내 시장에서의 우위성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국내 가전 제품 시장 최대의 기업은 1959년 설립된「금성(현 LG)」이였습니다. 그런데 1977년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발매하고, 1980년대 컬러 TV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양사의 입장은 역전되었습니다.
삼성 전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1987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기업이 됩니다. 그런데 LG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두 기업은 90년대,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적극적이고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양사의 대응력을 높였고, 이것이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가전 제품 회사들을 추월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과거 90년대 브라운관 TV시대 때만 해도,「소니(Sony)」, 「샤프(Sharp)」, 「파나소닉(Panasonic)」 같은 일본 회사들이 세계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게다가 LCD TV라는 신기술에 대해,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기업은 일본의 「샤프」였습니다. 1997년, 전세계 LCD 생산량의 80%를 일본이 쥐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회사들과 삼성전자, LG전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투자 결정 전략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 전년도의 실적을 보고, 투자 규모 결정을 하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경우, 보다 빠르게 신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전년도 실적이 나쁘더라도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예측하고, 과감히 투자를 실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 2001년도의 시장 상황이 좋았으면, 2002년도에는 일본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투자하여 설치된 설비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는 2003년에 이르러서는 생산 과잉으로 모두가 적자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2004년도에는 일본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반대로 한국 기업들은 이 타이밍에 투자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2005년도의 생산 과잉상태에서 벗어나 호황이 되면, 한국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보게 되고, 이 상황에 본 일본 기업들이 2006년도에 투자를 결정. 그리고 2007년 대규모 적자..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6개사와 한국 2개사의1998년~2002년까지의 실적을 살펴보면, 일본 6개사의 경우 매출액은 41,679억엔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나, 영업이익은 -191억엔으로 적자 상태였습니다. 반면 한국 2개사의 경우 매출액은 21,012억엔으로 다소 낮으나 영업이익은 4,393억엔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은 이익을 볼 수 없으니, LCD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게 되고, 결국에는 LCD TV가 브라운관 TV를 밀어내고 대세가 되면서, 2000년도 초반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TV시장을 석권하게 됩니다.
위의 패턴은, 반도체 사업에서도 완전히 똑같이 반복됩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경쟁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투자를 줄인 시기에, 삼성전자는 반대로 설비투자를 대폭 늘렸습니다. 그리고 업황이 돌아서면서 동시에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애플(Apple)」이 "iPhone"을 출시한 이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 매우 공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2009년 갤럭시 라인업을 발표했고, 2011년 3/4분기에 이르러서는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매출액 세계 1위를 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현재는 애플에 다시 추월당한 상태입니다.
삼성 전자의 강점과 약점
이러한 사례, 그리고 창업기의 사례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삼성전자의 최대의 강점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평가됩니다. 사실 삼성전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거의 도산 직전 상황에까지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광범위한 구조 개혁을 단행한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09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독일의 「Siemens」와 미국의 「Hewlett-Packard」를 뛰어넘었으며, 2019년 기준으로는 연간 매출 230.4조원, 영업이익 27.77조원을 기록하면서, 「Apple」에 다음가는 IT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창업초기부터 다뤄왔던 백색가전 뿐만 아니라, 메모리와 LCD 휴대폰 TV 등 거의 모든 전자 제품 분야에 진출해있고, 제품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편이지만, 매출 비중으로 따지면 반도체와 LCD사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 업황변화에 의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또 규격화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양산 기술"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지만, 압도적인 크기의 기업 규모에 비하면 원천 기술 확보 면에서는 미흡한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삼성전자는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낸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시장창출능력 즉, 창의성은 부족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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