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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

1.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회사는?
2.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는?
3. 인류 역사상 최초의 다국적 기업은?

4. 그 뒤...

 

 

1.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회사는?


그것은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입니다. 1602년부터 1799년까지 2세기동안 존재했던 VOC(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이하 VOC)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업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당시의 시가총액 규모를 환산하면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삼성 등 세계 20대 기업의 시가 총액을 합해야 겨우 맞먹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VOC가 성립되었던 시점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는 유럽의 약소국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는 고작 20만 명이었지요.

게다가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 독립 전쟁의 대가로 네덜란드의 대 스페인 무역이 중단되어 버렸고, 네덜란드는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해상 무역에서 수익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항로 개척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고, 자국 기업끼리의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연합회사를 설립합니다. 이것이 VOC의 시작입니다. 사실 출범시의 정식 명칭은 ‘통합 동인도회사(VNGOC)’로 회사 이름이 말해주듯이 VOC의 설립 취지는 통합에 있었습니다.

 

 

 

2.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는?

 

그것도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니다. VOC가 설립되기 전, 당시 해상무역에서는 포르투갈이 아시아 항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했고, 영국과 스페인이라는 강적이 있었으므로, 네덜란드는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상인들과 의회는 새로운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무역선단을 꾸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만의 재정으로 그런 대규모 선단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때 나온 아이디어가 주식회사 개념입니다.

 

VOC는 왕실이나 특정 귀족의 지원이 아니라 일반인에게서 동아시아 무역을 위한 투자자본을 모으고, 무역이익을 투자금액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이때 투자자금의 권리를 증명하는 증서를 발급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주식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VOC는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 요인중 하나로서는 경영과 투자가 분리된 분업구조를 들 수 있지요. VOC가 설립되기 전까지, 개별 선박은 특정 상인들의 자금 지원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VOC 설립 이후부터는 수백 명의 투자자가 동시에 수백 척의 선박에 투자할 수 있게 되어, 위험을 최소화되게 됩니다. 위험이 줄어든 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지고, 이 공격적인 투자야말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겁니다.

 

 

 

3. 인류 역사상 최초의 다국적 기업은?

 

네, 그것도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니다. 다국적 기업이란, 일반적으로 여러 나라에 걸쳐 영업 내지 제조 거점을 가지고 국가적 내지 정치적 경계에 구애되지 않는 세계적인 기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말라카, 스리랑카, 일본 나가사키(데지마), 타이완 섬, 중국 광저우는 물론 페르시아에까지 상관을 설립하여 영업 활동을 실시한 VOC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 되는 것이죠.

 

VOC는 이러한 아시아 내부의 교역망을 통해 중계무역을 실시해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중국과 일본산 도자기가 유럽에 퍼지게 된 것도 이 때죠. 후대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우게 되는 영국이, 주요 무역 대상을 인도로 정한 이유도, 향신료의 주산지인 인도네시아 확보 경쟁에서 네덜란드의 패배했기에, 정면 대결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네덜란드 정부가 설립 시점 VOC에게 많은 특권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1602년 3월 20일, VOC는 설립당일 46개 조항으로 구성된 특허장을 받았는데, 그 핵심은 아시아 교역권 독점. 군대 보유권, 요새 건설 허가권, 국가를 대신한 외국과 전쟁 선포권과 종전조약 체결권, 화폐발행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군산 복합체인 VOC는, 위와 같은 특권에 힘입어 고성장을 거듭해, 출범 50년이 안돼 20여 곳에 상관을 설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성기인 1670년대에 VOC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0,000명의 직원과 10,000명 규모의 군대를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그 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1660년대 남명이 청나라에 멸망하면서 중국무역이 대폭 감소하고, 같은 시기 일본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은 수입이 감소하자 회사의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VOC도 기존의 향료 무역으로부터 커피, 차, 도자기, 면직물 등으로 상품의 종류를 늘리고 상관의 숫자를 늘려 대응했죠.

그러나 1657년부터 경쟁사인 영국 동인도 회사가, 왕실 칙허운영에서 주식회사 시스템으로 재편되면서, 그 규모를 크게 늘리게 되어 보다 경쟁이 치열해지게 됩니다. 1700년대 이후로는 신대륙에서도 향료, 설탕 등의 상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수익이 악화되었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대주주들이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사들여 회사를 장악하고 고배당을 받아가며 재원을 고갈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780년~1784년 동안 치러진 4차 영국 vs. 네덜란드 전쟁으로 VOC의 재정 상태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으로 세워진 바타비아 공화국에 의해 VOC 국유화되었고, 모든 인허가권은 회수되었으며, 1798년 공식적으로 해산하게 됩니다. VOC의 아시아 지역 재산권은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에 양도되었고, 영국 동인도 회사가 VOC의 기반 시설을 인수했으며, VOC가 소유했던 식민지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은 네덜란드의 직할령이 되었지요.

그러나 VOC의 공식적인 해산 이후에도, 금융, 상업 부문은 네덜란드 무역회사(NHM)에 인계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현존하는 네덜란드 대형 시중 은행인 ABN-AMRO 은행의 전신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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