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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하면 가성비는 둘째치고, 기술력은 좋다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식은 대체 언제부터였을까요? 메이지 유신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후?

 

INDEX

1. 일본 기술은 처음부터 세계 제일?
2. 일본 기술의 히든 챔피언

3. 한국은 이것이 어째서 불가능했는가?

 

 

1. 일본 기술은 처음부터 세계 제일?

 

양차 세계대전 직후, 즉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제품의 기술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공업 기술력으로는 다른 열강에 비해 뒤떨어졌었을 정도였고, 세계대전 직후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도쿄를 포함한 대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기에, 기술력은 더더욱 열화되었던 것입니다.

 

1950년대까지만해도, 일본 상품의 국제 경쟁력은 실질적으로 전무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교해 볼때,당시 일본 제품은 기술수준이나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미국 시장이나 유럽시장에서 일본 제품이란, 잔고장의 대명사이자 웃음거리에 불과했지요.

당시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이미지와 일치했습니다. 품질은 별로지만, 싼맛에 쓰는 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본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수출가격을 국내가격보다 상당히 낮게 책정하는 것으로 간신히 해외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 이유는, 일본의 거대한 내수시장 덕분이었습니다. 전쟁 직후, 거의 폐허나 다름없게된 일본이었지만 운 좋게도 한국 전쟁이 터졌고, 이것이 조기 봉합되지 못하고 3년동안 질질 끌었습니다. 이 전쟁 특수 덕분에 일본의 내수 시장이 커질 수 있었고, 수출가격을 국내가격보다 낮게 책정하여 본 손실을 내수 시장에서 만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일본 기술의 히든 챔피언

 

일본은 초기에는 내수 시장에 기대는 형태 경제를 발전시켜왔지만, 1950년대의 선진기술을 답습하던 단계를 지나, 60년대로 접어들자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이 시기가 되자, 일본은 국내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때로는 국내가격보다도 더 높은 가격으로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중국이나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 같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경쟁적 과점 구조를 통한 대기업 간의 경쟁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모든 핵심 산업은, 주요 대기업들 간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질개선과 기술 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대기업들도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중소 하청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여,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이 결과, 경쟁을 통한 효율성 증대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 기업 수준에서도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일본이 현재의 기술력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기계 분야에 있어서, 일본의 기술력이 여전히 세계 최고인 이유입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일본 경제의 대들보인 자동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하청업체들의 품질 관리가 되지 않고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 부품의 품질 기준을, 지금껏 만족시켜왔다는 점에서, 일본 중소기업들의 저력을 가늠해볼 수 있겠죠.

 

 

 

3. 한국은 이것이 어째서 불가능했는가?

 

한국과 일본은, 사실 시작점부터 달랐습니다. 한국전쟁은 단독으로도 세계대전에 준하는 규모의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약 40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일본 전토의 절반을 조금 넘는 면적의 한반도에서, 3년동안 치고 받았습니다. 따라서 전쟁 직후의 한국은, 패전 직후의 일본보다도 더 황폐화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세계 대전 직후의 부흥의 기세를 타고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은 이보다 한발 늦게 세계 시장에 참여하게 되었던 겁니다. 당시 한국은 기술력도 내수시장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한국전쟁도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탓에,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해야만 했고요. 미국의 원조 덕분에,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의 돌파구가, 한일 기본조약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얻은 자금 및 차관으로, 한국은 공장을 짓고 설비를 구입하여 공업국가로서 도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 일본처럼 기반이 되는 중소 하청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핵심 소재/부품은 전부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죠.

한국 대기업과 일본 대기업의, 하청 업체에 대한 관행의 차이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국의 대기업같은 경우, 원래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의 기술이 부족하면, 기술을 가진 외국기업과 제휴하여,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려는 경향이 높습니다. 현재 한국의 핵심 소재/부품의 외국 의존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죠.

 

그런데 일본 대기업이라면, 원래 거래관계에 있던 기존의 하청업체와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여, 해당 기술을 안정적으로 관리 및 조달받으려 합니다. 이런 일본의 방식은, 대응 속도는 느릴지언정 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득이 큽니다. 특히 지금처럼 일한 무역 마찰과도 같은, 외교 마찰로 인한 피해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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