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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기의 LG전자

1947년, 창업자인 구인회(Koo In-hwoi)가 LG그룹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는「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고, 생활용품 사업 및 플라스틱 제조업을 실시하며 사세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1958년 10월, 부산에 「금성사(Goldstar)」라는 전자 회사를 설립되었고, 이것이 바로 LG전자의 전신이 됩니다. 설립 직후부터 LG전자는 국내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 "A-501"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선풍기, 자동 전화기, 흑백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차례로 발매하며, 적극적으로 가전제품의 국산화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에 이르자, 최대의 라이벌인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가 등장하게 됩니다. 사실 삼성과 LG는, 사업 영역도 다르다보니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LG의 경우 화학이나 전자제품을 다뤘고, 삼성은 이때까지만해도 조미료와 모직 사업이 주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이 「산요전기(三洋電機)」와의 합작으로 전자 제품 시장에 뛰어들 것을 천명하자, 양사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산요전기의 기술을 도입해오는 삼성에 맞서, LG전자는 자사의 기술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LG전자는 공장별로 소규모 연구소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으로는 종합적인 기술개발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1976년 대한민국 민간기업 최초로 전사적 중앙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결국 LG전자는 삼성전자에게 국내 최초 컬러 TV발매라는 타이틀을 빼앗겼고, 1980년대 컬러 TV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양사는 팽팽히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LG전자는 어떻게 일본 기업들을 제쳤을까?

1987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기업이 됩니다. 그런데 LG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두 기업은 90년대,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적극적이고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양사의 대응력을 높였고, 이것이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가전 제품 회사들을 추월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과거 90년대 브라운관 TV시대 때만 해도,「소니(Sony)」, 「샤프(Sharp)」, 「파나소닉(Panasonic)」 같은 일본 회사들이 세계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게다가 LCD TV라는 신기술에 대해,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기업은 일본의 「샤프」였습니다. 1997년, 전세계 LCD 생산량의 80%를 일본이 쥐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회사들과 삼성전자, LG전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투자 결정 전략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 전년도의 실적을 보고, 투자 규모 결정을 하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경우, 보다 빠르게 신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전년도 실적이 나쁘더라도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예측하고, 과감히 투자를 실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 2001년도의 시장 상황이 좋았으면, 2002년도에는 일본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2003년에 이르러서는 생산 과잉으로 모두가 적자를 보게 되면, 2004년도에는 일본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반대로 한국 기업들은 이 타이밍에 투자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2005년도의 생산 과잉상태에서 벗어나 호황이 되면, 한국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보게 되고, 이 상황에 본 일본 기업들이 2006년도에 투자를 결정. 그리고 2007년 대규모 적자..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6개사와 한국 2개사의 1998년~2002년까지의 실적을 살펴보면, 일본 6개사의 경우 매출액은 41,679억엔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나, 영업이익은 -191억엔으로 적자 상태였습니다. 반면 한국 2개사의 경우 매출액은 21,012억엔으로 다소 낮으나 영업이익은 4,393억엔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은 이익을 볼 수 없으니, LCD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게 되고, 결국에는 LCD TV가 브라운관 TV를 밀어내고 대세가 되면서, 2000년도 초반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TV시장을 석권하게 됩니다. 

 

 

 LG전자의 현주소

라이벌인 삼성전자에 비교하면 연결 매출액에는 상당히 큰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LG전자가 다루지 않는 반도체나 스마트폰 관련 사업을 제외하면, 양사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사실 LG전자는 반도체 사업도 다루었는데,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정부의 정책으로 LG의 반도체 사업은 현대전자로 넘어갔고, 이 반도체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SK하이닉스」가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받는 스마트폰 사업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한국 국내에서는 애플과 시장 점유율 2위 경쟁을 하고 있는 반면, 세계 8위권대의 점유율을 확보했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전면적으로 선언했죠. 사실 LG의 스마트폰 사업은 그다지 수익성이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까지 끈질기게 계속해서 유지했던 이유는 소니처럼, 앞으로의 IoT시장의 확대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난항을 겪었고 사업정리까지 단행하게된 스마트폰 사업과는 달리, 가전제품에서는 국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LG의 제품들은 대체적으로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에 힘입어, LG전자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TV를 제외한 가전 제품의 경우, 2017년 「Whirlpool」을 뛰어넘은 이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큰 반면, LG전자는 부문별 편중이 적은 편이기에, 실적의 안정성이 높은 편입니다. 

다만 LG전자는 조직문화적으로 전형적인 Top-down 회사이며, 상명하달식의 군대식 조직문화가 가장 우선시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체성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기 보다는 경쟁사, 특히 삼성의 동향을 따라하기에 급급한 행보를 보이는 점이,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제품성능은 뛰어난데, 삼성전자 등에 비해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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