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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은 무의미했을까?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분명 수많은 이름들이 나열될 겁니다. 하지만 그 이름들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만리장성"이라는 단어를 아주 높은 확률로 볼 수 있게 되죠. 우리 말에도 "만리장성을 쌓다" 라는 표현이 존재하거나 "만리장성은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공물이다"라는 대표적인 오해가 있는 등, 그 인지도는 매우 초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리장성이, 본래 성으로서의 방어적 기능이 뛰어났을까요? 사실 비용 대비 방어력만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세금낭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2,700km이며, 갈라져나온 가지를 하나하나 전부 합하면 6,400km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규모 자체는 초월적이기 때문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길이가 너무나도 길다는 점은 방어하기에 불리합니다. 저 2,700km를 물샐틈없이 방어한다는 건 현대 중국급 인구풀을 지니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고, 따라서 수비측은 경계를 위해 병력을 분산배치시킬 수 밖에 없어집니다. 반대로 공격 입장에서는 개전 시점 및 장소, 병력 규모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지점을 집중공격하면 공성능력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유목민족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돌파가 가능할 지경입니다.
이런 까닭에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만리장성을 “위대하고도 저주스러운 장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대 중국 시절 막대한 토목공사를 벌여 만리장성을 건설했고, 그 이후로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루면서 장성을 유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해 들어오는 유목민족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으니, 근대 중국 지식인 입장에서는 무능하게만 여겨졌던 것입니다. 다만, 만리장성을 공격자를 저지하기 위한 요새(Fortress)가 아니라 국경선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건설 초기까지만 해도 만리장성은 공격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즉, 고대 중국이 영토를 팽창하는 과정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유목민이 내쫓기 위해서 건설한 것이었죠. 특히 북방 유목민족은 기병 비율이 높았는데, 벽을 쌓아서 이들의 장점인 기동력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국경선으로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죠.
이는 과거 로마 제국이 브리타니아에 건설한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맥락이 같습니다. 이 하드리아누스 방벽도 켈트족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의도라기 보다는 자국의 지배력의 한계선을 나타낸 것에 가깝습니다. 지도로 나타내지 않는 이상, 국경선이라는 존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경선이 없다면 어디까지가 자국 영토이며 타국 영토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의도치 않은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이때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나 만리장성처럼 인위적으로 구조물을 설치하여 자신들이 설정한 국경선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상대에게 전달하면 쓸데없는 분쟁을 피할 수 있죠. 즉, 실질적인 방어 목적이라기보다는 강이나 산맥이 없는 지역에서 국경선을 설정하기 위한 의미가 더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시황 당시에 쌓았던 만리장성은 돌이 아니라 흙으로 지은 토성이었으며, 그것만으로도 국경선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했죠.
또 고작 한 겹에 불과한 성이라 방어력은 낮지만 일단 장성이며 경계병력이 어느 정도 배치되어 있는 이상,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무력으로는 돌파하기 힘듭니다. 만약 장성이 없다면 감시망을 피해서 얼렁뚱땅 잠입할 수 있었겠지만, 장성이 생긴 후에는 부족 단위 이상의 대규모 군사행동이 동반되지 않으면 침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장성을 공격한다는 행위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으며, 이때 수비측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였습니다. 제1선에서 적을 막아내기보다는 적의 진공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키고, 봉화 등의 연계수단을 활용해 후방의 방어군이 실질적인 방어태세에 임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죠. 만약 장성이 없다면, 이럴 시간조차 없이 기습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만리장성도 충분히 의미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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