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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면도날은 빨리 무뎌질까?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면도죠. 최근 들어 코로나 때문에 외출하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기는 하지만, 외출을 안한다고 털이 나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면도기용 면도날은 그 예리함이 너무나도 쉽게 사라진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같은 철제 칼이라도 주방용 칼은 딱히 손질하지 않아도 그 예리함이 상당히 오래 가는데, 왜 면도날은 너무나도 쉽게 두뎌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면도날 메이커들의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를 의심하기 쉽습니다. 면도날 교체 비용이 주기적으로 들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합당한 추측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면도날도 썩어도 철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면도날 메이커들이 작정하고 쉽게 무뎌지도록 설계해 놓았다고 해도, 그래도 "철"인 이상 분명 인간의 피부나 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대도 안될 정도로 단단할 텐데, 왜 면도날은 고작 1~2주 정도만 사용해도 쉽게 무뎌지는 것일까요?
면도날은 철이기는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합금(合金)입니다. 합금이란 2종류 이상의 금속을 혼합한 것을 의미하는데, 면도날의 경우에는 철과 탄소입니다. 면도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얇고 부드러운 철 금속 조각을 가공하게 되며, 이 금속 조각에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여 이상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철은 기본적으로 단단한 물체입니다만,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균일성을 잃어버리고 필연적으로 약한 부분이 생기고 맙니다. 이 탓에 면도날의 강도는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부분에 따라 다른 것이죠. 특히 약한 부분과 강한 부분이 맞닿아 있는 접합부분이야말로 날빠짐이나 균열에 가장 취약한 요소이죠.
또 털이 구부러지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면도날이 쉽게 무뎌지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대로, 면도날이 털에 닿게되면 날과 털은 상호적으로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털 뿌리는 피부에 접촉한 상태에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면도날이 털에 접촉하게 되면 털이 약간 뒤로 물러나며 이 탓에 털과 면도날의 각도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는 곧 칼날의 약한 부분에 걸리게 되는 부하를 늘리게 되죠. 뿐만 아니라 털은 단단한 외층이 부드러운 내부를 덮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털을 끝부분부터 잘라내는 부분의 칼날은 이중으로 충격을 받게 되며, 약한 부분이 데미지를 입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실제로 면도날을 주사형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하는 실험에서는, 사용자가 면도날의 무뎌짐을 느끼기 훨씬 이전 단계부터 이미 면도날에 부분적으로 균열이나 만곡이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뎌짐을 느낀 시점에서는 이미 깨진 부분마저 관측할 수가 있었죠. 즉, 그냥 털을 자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미 면도날에는 상당히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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