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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에서 황제(Emperor)라고 불리우는 인물은, 지구상에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전세계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군주제 국가들이 있지만, 다들 왕이라고 불리울뿐 황제는 일본 천황을 제외하고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국제사회에서 천황만이 왕보다 위의 존재인 황제(Emperor)로 지칭되고 있는 것일까요? 일본인 입장에서는, 천황이라는 존재는 중국의 황제와 대등하기 때문에, King이 아니라 Emperor라고 생각하고 또 주장하는 것은 당연할 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왜 세계인들은 이런 일본의 응석으로 오냐오냐 받아주는 것일까요? 

 

 일본 천황은 어째서 King이 아니라 Emperor라고 불리는 것일까?

일본의 천황을 서양에서 Emperor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말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독일의 의사인 앵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라는 인물이 1690년부터 약 2년간 일본에 체류하다 귀국하였고, 이때 일본에 대한 이모저모를 다룬 일본지(日本誌)를 저술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 천황과 쇼군에 대해 소개할 때, 일본을 다스리는 왕(King)이 아니라, 황제(Emperor)라는 표현을 썼고, 이 책이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의 천황을 황제(Emperor)로 칭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앵겔베르트가 굳이 황제(Emperor)라는 표현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의 황제를 의식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됩니다. 그가 일본지를 저술한 17세기 무렵, 이미 유럽에는 일본보다도 중국이 훨씬 먼저 그리고 자세히 알려져 있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왕이라는 존재는, 황제의 신하에 불과한 존재였기 때문에, "동양의 왕=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도식이 유럽인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는,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에는 직접적으로 편입되어 있지 않았던 이질적인 존재였기에, 만약 그가 천황을 왕(King)이라고 번역해서 소개해버리면,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일본 천황은 중화황제의 아래라고 간주하는 오해를 범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황제(Emperor)라는 표현을 씀으로서, 일본이 중국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대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죠. 어찌됐건 앵겔베르트의 일본지는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출판되었고, 18세기 후반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백과전서를 편찬할 때, 일본 관련 정보 중 거의 대부분을 이 일본지에서 그대로 인용하면서, "일본 천황=Emperor" 라는 인식이 유럽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국호개방을 실시하고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편입되기 시작한 메이지 시대 때, 일본은 대외적으로 천황을 황제(Emperor)로 칭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세계 각지에서 "우리나라는 제국이다!", "나는 황제다!" 를 칭했던 황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의 황제칭호에는 태클을 거는 나라는 없었죠. 그러다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의 많은 군주국가가 몰락하게 되었고, 황제를 칭했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엉겁결에 세계에서 유일한 황제로 남게 된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따지면, 천황은 황제라기보다는 왕에 지극히 가까운 존재입니다. 동양의 황제와 서양의 Emperor는 사실 그 유래도, 개념도 다르며 엄밀히 따지면 절대 동의어 관계가 아닙니다. 다만 공유하고 있는 특징은 있는데, 황제(Emperor)라는 존재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는 군주로서, 여러 지역의 국가나 민족의 왕을 아래로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왕중왕이 황제라는 겁니다. 반면, 특정 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존재는 주로 왕이라고 지칭되지요. 그러니 천황은 일본국민의 장이기 때문에, 왕(King)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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