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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전투민족(Martial Race)이란, 신체능력이 뛰어나고 전투기술이 높은 사람들을 가르키는데, 사실 이 단어는 영국령 인도의 군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명칭입니다. 당시 영국은 인도의 대부분을 점령할 수는 있었지만, 주로 산악지대나 고지 등 특정 몇몇 지역에서는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지역의 민족들은 선천적으로 호전적이며 신체능력이 뛰어나 병사로서 쓸만하다고 판단하여 이들을 "전투민족"이라고 분류하게 된 것이, 이 단어의 시작입니다.

"강하다"라는 긍정적인 이미지 탓에 전투민족이라는 단어가 마치 칭찬같아 보이고, 심지어는 이들 민족 스스로가 전투민족이라고 자칭하는 경우도 있기에 가끔 간과되기는 하는데, 사실 이 단어에는 "전투만 잘하는 야만적인 종족"이라는 인종차별, 우생학적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이란, 본디 동일한 인종이란 일치감을 느끼는 특정한 인류 집단이, 다른 인종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에게 행하는 차별 행위를 의미하며, 이에는 단순한 적대감뿐만이 아니라 호감도 포함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투민족이라는 단어는 확고부동한 인종차별이라고 볼 수 있죠.

위의 윤리적인 문제를 일단 제쳐놓고, 전투민족이라는 것이 과연 성립되는 개념일까요? 전투에 특화하도록 진화한 민족이라는 건데, 일단 전투의 사전적인 의미는, "두 편의 군대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무장을 갖추고 싸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개인과 개인간의 주먹다짐 같은 건 전투가 아니죠. 전투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국가 또는 국가급의 무장집단이 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종이 분화된 시기가 대략 3만년 전이고, 농업이 시작된 것이 약 1만년 전이며, 문명의 발생은 6,000년 전입니다. 즉, 국가급 규모의 조직이 등장하고 전투라는 행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일러야 6,000년 전으로, 전투라는 행위가 인간의 진화과정에 유의미한 진화 동기를 부여했다고 보기에는 대단히 짧은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민족이 되기 위해 시도했던 민족은 많았고, 이들은 하나같이 생존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 약탈 경제를 통해 사회체재를 유지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파르타죠.

 

 

스파르타

기원전 8세기 무렵, 리쿠르고스 체계를 성립시키고 스파르타식 교육제도를 도입한 스파르타는, 그야말로 우생학적 사고방식의 결정체였습니다.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신체적 문제가 있으면 절벽에 떨어뜨려 죽이고, 결혼조차도 국가에서 정했으며, 훌륭한 전사의 피를 받기 위해 남편이 씨내리를 구하기도 하는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이를 통해 개개인으로서의 강한 전사를 육성하는 데는 분명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규모의 무력이 충돌하는 회전에서는 개개인의 전투력보다는 전술의 중요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전투에 있어서는 테베나 아테네 등 다른 폴리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체재 유지를 위해 폐쇄적이고 가혹한 사회구조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이주민은 거의 없었고, 빈번하게 영아 살해와 유기도 벌어졌으며, 인적 자원은 전쟁을 벌이면 벌일수록 소모된 까닭에, 고대 시대 이래로, 스파르타의 성인 남성 인구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펠레포네소스 전쟁에서는 운좋게도 아테네에 역병이 창궐한 덕분에 큰 피해없이 승리하게 되었지만, 테기라 전투나 레욱트라 전투 등에서는 상대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했고, 이때 많은 스파르타 시민이 소모되며, 스파르타는 몰락하게 됩니다. 그 후부터 스파르타인들은 외국에서 용병으로 일하거나, 특이한 생활양식을 가진 관광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전투민족들이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위의 스파르타의 예는, "전투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살아남기 힘든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전투민족은 전투를 생활수단으로 삼아야 하기에, 스스로 뭔가를 생산하지 못합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탈경제에 의존해야만 했는데, 전쟁에서 이길때는 다른 민족에게서 자원을 약탈할 수 있으니까 별 탈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에서 언제나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전쟁에서 지게되면 사회 유지를 위한 자원수급에 큰 타격 입게 되고, 약탈 경제 탓에 다른 민족과의 관계도 좋을 리가 없으니 외부에 손을 벌리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패배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몰락하여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전투민족이라는 건 결국 육식동물과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자 같은 육식동물은 언뜻 보면 용감해보이나, 사실 육식동물들은 용감하다기 보다는 교활한 편입니다. 이들은 사냥감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시합니다. 야생의 세계에서, 사냥에 실패하고 부상을 입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떄문에, 육식동물은 어디까지나 자신보다 명백히 약한 상대를 골라 공격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파르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용감하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마라톤 전투나 테르모필레 전투의 경우에서 보이듯,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군사적 책임을 회피했죠. 한번 지면 끝이라는 걸 자기들도 아니까, 지거나 피해가 클 것 같은 전쟁을 피하려한 것입니다.

즉, 전투나 약탈을 통해 특정 공동체가 유지될 수는 있습니다. 또 용감하고 강하다는 전투민족이라는 프로파간다는 어느 정도 전쟁 억지력으로는 작용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그로를 쉽게 끌기 때문에 주변의 공격을 받기 쉬워지고, 한 번 몰락하게 되면 재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사실 용감하다는 속성마저 겉으로는 화려해보일지는 몰라도, 진화론적으로는 명백히 불리한 요소입니다. 오히려 위험요소들을 재빨리 감지해내고 피할 수 있는 겁쟁이의 형질이 생존에는 훨씬 유리하죠. 과거 전투나 약탈을 통해 유지되어오고 있는 공동체들은 많았지만, 이런 이유 탓에 그들 중 절대 다수가 자멸하거나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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