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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외화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알겠지만, 일본어 자막 또는 더빙은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일본어에서는 거의 들을 수가 없는 "~だわ", "~だもの", "~さ" 같은 어미를 매우 빈번히 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어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기묘하게 들립니다. 게다가 실제로 일본어가 가능한 외국인 중에서, 이런 외화에서 나온 것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컨셉충이 아닌 이상 없습니다.

또 외국어, 특히 영어에 존대말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반말로 그냥 번역해버리는 게 부지기수인데, 영어에도 충분히 존댓말은 존재합니다. 단지, 일본어나 한국어처럼 어미의 형태가 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Please"처럼 문장에 추가요소가 붙거나, 돌려말하는 방식을 취할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그리 반말로 번역해버리는 케이스가 종종 있어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보면 굉장한 위화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정점을 찍는 것이, 일본인의 영어 인터뷰 장면입니다. 각종 체육 대회에서 수상한 일본인이 영어로 기자회견을 할 때, 그 영어 발언은 일본내 미디어에서는 주로 경어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다른 외국인 선수의 발언은 똑같은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반말로 번역되어 버리죠. 존대말 구조가 일본어와 비슷한 한국어조차, 존대말로 기자회견을 해도 일본어에서는 반말로 번역되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일본인 입장에서는, "외국인은 예의가 없다"는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일본어 자막은 왜 반말이 많을까?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몇몇 사람들은 자막을 만들 때의 문자제한을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외화의 일본어 자막의 경우, 1초에 4문자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1행은 13.5문자로 2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문자수 제한이 있습니다. 아무리 전후 장면 흐름을 기초로 자막을 만든다 할지라도, 이러한 제약이 있으니 일본어 자막이 실제 대사와는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또 시청자들이 그 장면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의역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내용이 달라지는데에 영향을 주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본의 드라마 등에 자주 쓰이는 개념인 역할어(役割言) 때문이라고 아닌가 싶습니다. 역할어란, 특정 인물(연령·성별·직업·계층·시대·용모·성격 등)을 상기시키기 위한 표현 방식을 뜻하는데, 말하자면 시청자가 해당 인물을 이해하기 쉽도록 부여한 언어적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외화・외국인 인터뷰에도 채용하여, 외국인 같이 보이게 하는 이미지를 번역 및 더빙에 적극적으로 투영시키게 되는 겁니다. 이건 업계의 암묵의 룰 같은 거죠.

그 결과, 실제 외국인이 어떤 말투로 말을 하는 가와 상관없이, 일본인의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기초로, 번역・더빙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듣기 힘든 "~だわ", "~だもの"와 같은 말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가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닭살이 돋을 수 밖에는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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