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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요소에는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 정치 안정성 등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베이스가 되는 힘이 바로 인구였습니다.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인구가 뒷바침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중국 문명의 기초가 되었던 황하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가장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다른 문명들을 인구수에서 압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중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다른  동아시아권의 여러 나라들은 동일한 농지 면적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역사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말은, 그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정답은 쌀의 힘이었습니다.

 

 

 

 

 

1. 쌀의 힘!?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기 전, 과거에는 농업 생산력이 곧 국가의 국력을 의미하였습니다. 농업 생산력이 적으면 인구가 집중되지 못하며, 잉여 생산물도 생기지 않으므로 문명조차 형성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가능한한 많은 농지를 확보하고, 가능한한 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것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발생시키고 인구를 집중시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명의 지상과제임과 동시에,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쌀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발휘됩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기준, 쌀은 전세계 평균적으로 1헥타르당 평균적으로 4.5톤을 생산됩니다. 이는 밀의 1헥타르당 평균 생산량인 3.3톤에 비해 36% 더 높은 생산성입니다. 게다가 밀 100g의 열량은 330칼로리인데 반해 쌀은 360칼로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위 면적당 인구부양력은, 밀에 비해 쌀이 48.7% 가량 더 높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쌀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입니다. 즉 단위 면적당 인구부양력에서 쌀이 밀보다 높으므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권의 여러 나라들의 인구밀도가, 밀을 주식으로하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와 잉여 생산물의 발생은, 자연히 문명 수준을 개선시킵니다. 

송나라 시기, 양쯔강 이남에서 논을 통한 쌀의 집약적 재배가 가능해진 것이, 중국의 과학 기술력이 가파르게 발전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였습니다. 또 일본 최대의 평야지대이자 농업 생산력이 좋았던 간토 평야를 지닌 에도 지역이, 일본 정치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 까닭도 이것이었습니다.

 

 

 

2. 쌀의 한계

 

쌀은 기후적 영향을 아주 크게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벼는 열대 저습성 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강우량과 일조량이 풍부해야만 자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쌀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물은 2~3.5톤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밀 1Kg 생산에는 1~1.2톤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쌀농사에는 밀의 두 배 이상의 물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벼농사를 지을 때는 논과 같은 인공습지를 만들어야 하며, 계속적으로 물을 공급해줘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벼농사를 짓는 모든 나라들이 "치수 사업"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한 해라도 치수 사업에 실패하면,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어디까지나 중국 신화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라 우임금처럼 치수 사업에 공적을 세우는 것으로 왕이 될 수 있기까지 했습니다.

즉, 쌀은 재배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곡물입니다. 게다가 식용을 위해서는 벼 껍질 부분을 벗겨내어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해야 했습니다. 이 가공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껍질을 까야했지요. 사실 이 기술이 등장한 것은 고작 100년 전입니다. 즉,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흰 쌀밥을 대중적으로 먹게 된 것은 고작 100년 전부터로, 그 이전까지는 현미밥이 보통이었지요!

 

 

 

3. 쌀의 의외의 영향?

 

가설이기는 하지만, 이 농사짓는 방법의 차이가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 차이를 결정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벼농사는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 차원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따라서 벼농사권에서는 개인이 서로서로 돕는 것이 당연한 풍토가 되었습니다.

 

반면, 밀농사에는 관개 시설까지는 필요 없었습니다. 쌀농사만큼 물이 필요하지는 않기에 자연 강우에 의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고, 개인 차원에서도 자급자족할 정도의 생산성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밀농사는 쌀농사에 비해 독립성이 컸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이런 생활패턴이 수천 년 이어져오면서 동아시아인과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생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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