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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의 일본은 참으로 미스테리한 국가였습니다. 오닌의 난(応仁の乱)이 발발한 이후 약 100년 동안 내전 상황이 지속되었고, 이로 인한 내부 국력 소모도 결코 작지 않았을텐데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한 직후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무리 현지 약탈을 악랄하게 했다지만 일본 입장에서 임진왜란은 7년동안 벌어진 해외 원정입니다. 그것도 몇만 수준의 소규모 원정이 아니라 10만 이상의 병력을 지속적으로 동원한 대규모 원정이었습니다. 전쟁 초기의 쾌진격이 무뎌진 이후에는 조선 영토에서의 현지 징발에도 한계가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유재란을 일으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두 차례 대규모 해외원정을 끝내고 고작 2년후에는 세키가하라에서 양군 총합 17만명이 격돌하거나, 기간은 한정적이었지만 20만이 넘는 대병력이 동원된 오사카 전투도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런 내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관동 일대의 다이묘들은 왜란 내내 매우 소극적으로 참전하여 전력을 온존시켰기 때문인데, 이는 거꾸로 말하면 임진왜란 때 드러났던 일본의 국력조차 전력(全力)은 아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실제로 일본은 왜란 내내 총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항상 각 영지에 대기시켰지요. 명나라조차 조선 파병으로 재정이 휘청였을 정도인데 일본이 대체 어떻게 이런 대규모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애초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국력 자체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삼국시대까지만해도 한반도 국가들이 일본에 비해 인구면에서 우위에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수렵 및 채집에 가까웠던 죠몬 시대를 지나, 한반도로부터 대규모 이주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야요이 시대부터는 일본 국내에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인구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나라 시대에 이르면 일본의 추정 인구는 약 450만명에 도달하는데, 통일신라 시기 전체 인구수가 최대 400만 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8세기를 전후로 인구면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죠.
임진왜란 당시의 국력 비교
다만 임진왜란 시기의 조선과 일본의 국력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논란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나 조선의 추정 인구수에 대한 편차가 유독 심한 편인데, 연구자나 산정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왜란 직전 조선의 인구는 적게 잡는 경우는 약 700만에서 많게는 1,400만까지 보고 있으며, 대체로 약 1000만명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일본은 적게는 약 1,000만에서 1,800만 정도로 추산되며 내각부 데이터로는 1220만명으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농업 생산량은 보다 파악하기 쉬운데, 당시 조선의 경지면적은 대략 150만 정보로 추정되며 그 생산량은 대략 2000만석 정도로 계산됩니다. 조선의 전세액은 10분의 1이었으므로, 조선 정부에서 거둘수 있었던 조세는 최대 200만석 언저리였습니다. 다만 조선 전기 이후로 민심의 이반을 경계하여 세율을 크게 낮추었고, 세수 부족분을 공납(현물세)을 늘림으로서 충당하게 되므로 실질적으로는 세종 때 약 60만 석, 성종 때 약 44만 석까지 낮아지게 되죠.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실시했던 태합검지에 따르면 일본의 경지면적은 약 150만 정보로, 경지 면적만을 놓고 보면 조선과 대등합니다. 또 전국 다이묘의 石高를 모두 합하면 약 1850만석이 나오며 이 수치만 따지면 조선보다 약간 낮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 수확량 중 다이묘가 1/3을 가져가고 일본 정부도 1/3씩 가져가는 구조였기에 결론적으로 일본 정부의 세입은 최소 616만석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아울러 임진왜란 시기의 기록인 쇄미록에는 "조선의 일반적인 성인 남자는 1끼에 7홉이 넘는 양의 쌀을 먹는다"고 적었는데, 조선의 1홉은 지금의 약 1/3이며 당시에는 하루 2끼가 기본이었으므로, 조선인이 하루 동안 먹는 양을 현대식으로 환산하면 약 840ml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어른 1명이 1년에 1석을 먹는다고 계산하는데 1석은 1000홉이기에 매일 2.8홉 정도를 먹는다고 볼 수 있으며, 일본인이 하루 동안 먹는 양을 현대식으로 환산하면 약 504ml가 나옵니다. 이 수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당시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식사량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시기의 조선인들의 평균 신장이 일본인들에 비해 컸던 사실도 비교적 우월했던 조선의 영양사정을 반증해주죠.
정리
정리하자면 농업 생산량 자체는 조선이 일본보다 약간 우위(2000만석 vs 1850만석)에 있었으나, 세율의 차이로 인해 정부 세입은 오히려 조선이 일본보다 낮았다(200만석 vs 616만석)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전반적으로 조선의 평균 식사량이 일본보다 많았던 탓에 영양상태는 좋았지만, 인구 부양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적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이 때문에 전체 인구수도 일본보다 약간 적었습니다(1000만명 vs 1220만명).
상공업의 경우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중농억상을 추구했던 조선보다는 일본의 상공업이 더 발달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론이며, 당시 세계 최대의 은광 중 하나였던 이와미 은광(石見銀山)이 슬슬 포텐셜을 발휘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력 및 국력 자체는 일본측이 다소 우위에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건임에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의한 소모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으며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에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죠.
※본문 내에서 제시되는 데이터들은 아래 링크의 문서를 참조하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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