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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철학 서적을 조금이나마 들춰보면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믿음을 가져왔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소위 "현자"라고 불리우던 이 철학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유신론을 받아들였고 지구 중심설을 지지했으며 4원소설을 주장하면서 에테르의 존재를 믿어왔습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분명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에는 치밀성이 상당부분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개념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들의 논리를 보면 아주 황당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지요.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철학자이자, 2진법과 미적분을 발명한 위대한 수학자인 라이프니츠마저 모나드론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가끔 비과학적인 고전 철학자들의 주장을 현대 과학에 연관시키려는 시도가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원전에 대한 오독입니다. 그 주장을 펼친 철학자가 현대 과학의 개념이나 원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우주나 자연의 섭리, 세계의 구성요소 같은 것들은 이제 과학의 영역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여기에 철학이 파고들 여지는 거의 없고, 그로 인해 철학은 과학을 보조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걸까요? 보통 사람들은 철학이 없어도 사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이 떠드는 이야기는 현실과는 삼천만 광년정도 떨어진 동화에 지나지 않죠. 게다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진리인양 떠들어대기까지 하니까, 무슨 주장을 해도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철학은 그 자체만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에, 대학교에서도 철학은 가장 인기가 없는 학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철학만이 가지는 궁극적인 가치는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누구의 철학이든 거기에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끈질기게 고민하던 한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옛날 철학자들을 바보 취급하면 안되는 이유

고전 철학을 공부하는 행위는 치열하게 삶에 대해 고민해오던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이 처했던 상황은 분명 현재와는 많은 차이가 있고 이들의 지식 또한 적지 않은 흠결을 내포하고 있겠지만, 이들의 인생에 대한 고찰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납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도구, 기술 등은 격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인간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이런 저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도 많은 것들을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우리가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어떤 철학자의 주장을 지식으로서 습득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교양있는 척 뽐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 철학자들의 견해를 알고, 고찰하여,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나가기 위함입니다. 철학은 뭔가 고상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무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물음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눈 앞에 있는 세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다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를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나 진보는 언제나 인간이 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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