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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초작업 직후 나는 풀냄새의 충격적인 정체

집에 마당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바탕 제초작업을 끝마치고나서 그윽한 풀냄새를 맡으며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제초작업은 절대 만만치 않지만,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다보면 고된 노동으로 힘들었던 마음이 약간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냄새의 진짜 정체는 뭘까요? 일반적으로 풀들에겐 이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잔디밭에 코를 파묻고 킁킁거려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제초작업 이후에 맡을 수 있는 풀냄새와는 확실히 다르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런 풀냄새를 자연 그대로의 냄새라고 여기고 좋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쉽게도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듯 합니다. 인간이 느끼기에는 기분 좋을지 몰라도, 풀들에게는 전혀 유쾌한 냄새가 아니니까요. 과학자들이 이 냄새의 화학적 구성을 연구해본 결과, 바로 이 풀냄새는 풀들이 애벌레와 같은 초식성 곤충들에게 습격당할 때 내뿜는 일종의 조난신호라고 합니다. 인간에게 빗대어보자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행위가 바로 풀냄새라고 볼 수 있죠.

무생물처럼 정적이고 동작이 매우 둔할지 몰라도 식물을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현대인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동물만큼 민첩하게는 못하지만, 식물도 식물 나름대로 여러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상식의 영역에 속해 있죠. 예를 들면 풀과 같은 식물들은 잎이나 줄기가 손상되면 자기보호를 위해 유기화합물을 합성해내는데 Jasmonic acid와 Salicylic acid는 초식 벌레에게 식물이 더 맛없게 느껴지도록 작용하거나 균이나 박테리아 감염으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작용을 합니다. 또 Traumatic acid는 상처가 난 부위에 세포가 더 많이 만들어지도록 촉진하죠. 

그런데 이런 식물의 자기보호 매커니즘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로 GLVs(green leaf volatiles)인데, 이 GLVs는 마치 일종의 언어처럼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일의 과학자들이 야생 타바코를 연구한 결과, 야생 타바코가 벌레에 의해 공격받았을 때 GLVs를 내뿜게 되며 이 GLVs는 주위에 있는 육식 곤충들을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식물을 위협하던 초식 곤충의 구제(驅除)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GLVs가 증발되면 아주 특징적인 냄새를 만들어내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제초작업 직후에 맡게되는 풀냄새죠.

이 GLVs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Texas A&M University에서 한 실험을 실시했는데, 이 때 GLVs를 만들어낼 수 없도록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와 그렇지 않은 옥수수를 비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GLVs를 만들어낼 수 없는 옥수수가 훨씬 더 많은 해충피해를 입었다고 하네요. 정리하자면, 풀냄새를 싱그럽고 향기롭다느니 자연 본연의 냄새다느니 하며 감상에 젖어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전형입니다. 우리가 맡는 풀냄새는 정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내뿜는 발버둥이니까요.

 

※ 참고 문헌

<Mown grass smell sends SOS for help in resisting insect attacks>

<Insects Betray Themselves in Nature to Predators by Rapid Isomerization of Green Leaf Volatiles>

<Green Leaf Volatiles: A Plant’s Multifunctional Weapon against Herbivores and Pathog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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