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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돼지와 멧돼지는, 개와 늑대 정도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축화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죠. 돼지가 가축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6,0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초기에는 멧돼지와 비슷하게 털이 많은 편이었지만, 식용으로 사육되기 시작하면서 품종개량이 진전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멧돼지에게는 없고, 돼지에게는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불결하다는 이미지죠.
일반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돼지는 더럽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인식하고 교리상 먹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기독교 역시 정도만 다를 뿐 돼지를 불결하다고 인식하고 있죠. 지금은 돼지고기 없이는 죽고 못사는 중국에서조차, 중세까지만해도 돼지고기가 회충을 일으키고 풍을 통하게 하는 등 건강에 매우 해로운 음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돼지가 불결한 동물일까요?
돼지는 불결한 동물인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위생을 위해 배설물을 처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실제로 바빌로니아의 도시인 우르 지역에서 수세식 변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죠. 그러나 당연히 현대적인 하수처리시설은 아니었기에,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만명까지 모여사는 도시의 특성상 분뇨 처리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를 메꾸어주는 존재가 돼지였습니다. 골치아픈 분뇨 문제를 해결해주는데다 고기까지 제공해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도시들은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게 되었으며, 돼지에게 똥을 먹여 키우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져서, 돼지는 똥을 먹으니 더럽다는 이미지가 붙어버렸던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간주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유대인들이 돼지를 기를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곡식 잔여물이나 인간의 대소변을 사료로 쓰는 가축인데, 유대인들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염소나 양처럼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 정도나 기를 수 있었지, 돼지를 기르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오히려 구약성서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유대인들과 사이가 나쁜 메소포타미아 대도시들이 돼지를 대량으로 길렀기에, 도시인들이 키우는 돼지까지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로 여긴 것이죠. 이러한 유대교에 근본을 두고 있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게다가 돼지들은 배설물이 있건 말건 축사에서 뒹구는데, 이 행위도 돼지가 불결하다는 이미지를 증폭시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행동이자, 인간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전신에 땀샘이 분포한 사람과는 달리, 돼지의 땀샘은 코와 항문에만 존재하기에, 자력으로 체온을 낮추는데 불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지방층이 단열재 구실을 하는데다 몸의 형태가 통 모양이어서 체중당 표면적이 적기에, 체온이 오르기 쉽기까지 합니다. 이 탓에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야만 하며, 야생 돼지들은 차가운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으로 이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축사에서 길러지는 돼지들은 진흙 목욕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배설물 위에서 뒹굴며 자신의 체온을 식히는 것이죠. 사실 축사가 충분히 넓다면, 돼지는 용변도 특정 장소에서만 보고, 누워 쉬는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매우 청결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돼지를 아주 좁은 공간에 여러마리를 빽빽하게 가둬 키우는 밀식 사육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는 양돈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불결한 위생환경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돼지들을 바라보며 불결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돼지에게 더럽다는 이미지가 붙게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이 인간에게 병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다만 돼지가 더러워서라기 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인간과 닮아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것입니다. 돼지의 내장은 크기를 제외하면 인간의 내장과 놀라울만큼 흡사하며, 생리학적으로도 인간과 유사점이 많아,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의 매개체가 되기 쉽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갈고리촌충감염증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돼지고기는 충분히 익히고 먹어야 한다고 교육받죠.
정리
문명이 발생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배설물 처리를 위해, 인간은 돼지에게 똥을 먹이면서 사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영향으로, 전세계 42억 인구가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돼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돼지와 인간의 생리학적 유사성 탓에 인수공통감염병의 매개체가 되기 쉬웠기에,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무관한 중국에서조차 돼지고기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죠.
더군다나 돼지의 진흙목욕 습성과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야기된 불결한 환경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결과, 돼지는 더러운 환경에서 대량 사육되면서, 불결의 아이콘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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