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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면 쉽게 찾아볼수 있는 달팽이는 주위를 그저 느릿느릿 꼬물꼬물 움직입니다. 달팽이는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작으며, 무해하고 약해보이며, 그저 귀엽고 불쌍하기까지 하지만, 의외로 얘네들은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 지구는 최소 300만년 동안 달팽이를 비롯한 연체동물에 의해 지배당했습니다!
달팽이는 한때 세계를 정복했다!
그 원인은 약 2억 5천만년전 발생한 지구 역사상 최대의 멸종, 페름기 대멸종 사건입니다. 페름기 대멸종은 고생대의 페름기가 끝나는 순간에 시작되어 트라이아스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으며 "모든 멸종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만큼, 지구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점차 상승했으며, 이 때문에 대양 해류의 순환이 둔화되고, 바닷물 속의 산소의 용존량이 매우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탓에 삼엽충을 포함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멸종했습니다.
이렇게 멸종한 동물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굴이나 달팽이 같은 연체동물들입니다. 이들은 적응력과 생명력이 매우 높아, 페름기 말 같은 스트레스가 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달팽이는 대사율이 낮아지도록 진화된 생물인데, 대사율이 낮으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야생에서의 생존율은 낮아지지만, 성장이나 번식 등 다른 활동에 소비할 에너지를 더 남길 수 있었기에, 개체가 아닌 종을 존속시키는 데 있어서는 매우 효율적인 선택지였습니다.
또 달팽이는 매우 탁월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달팽이는 영하 120℃ 이하 냉동시키면 딱딱한 냉동 달팽이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 상태에서 온도와 습도를 적당히 조절하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납니다. 또 몇 mm정도로 매우 작은 달팽이는 수명이 1년 정도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크기의 달팽이는 애완용으로 기르면 1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달팽이 특유의 번식력, 성장력, 생존력 덕분에, 달팽이는 한때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를 정복했다고 해서, 원래부터 약했던 달팽이가 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페름기 대멸종 직후 300만 년간 세계를 지배하며 번성했지만, 게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공격력, 방어력, 민첩성 측면에서 달팽이는 게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결국 수많은 달팽이가 학살당하면서 지구는 게의 시대가 됩니다. 그러나 이 게마저 그 직후 파충류와 포유류의 조상인 수궁류에게 먹어치워지면서 지구는 점차 공룡의 시대로 나아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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