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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농업수출국의 충격적인 정체
세계적인 농업대국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가 떠오르시나요? 분명 여러 나라들이 머릿속을 스칠겁니다.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나 인도를 시작으로 북미대륙이라는 천혜의 요지를 보유한 미국, 그 다음은 브라질이나 러시아 정도가 농업대국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을 테니까요. 한국도 농업 역사 자체는 긴 편이지만 인구도 영토도 전부 부족한 지라 립서비스라도 농업대국이라고 말해주기 민망하지요. 그런데 여기에 아주 충격적이고 모순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인구는 우리나라의 1/3에, 국토면적으로는 절반 이하인 네덜란드가 바로 세계 2위의 농업수출국이라는 점입니다. 뭔가 잘못된 정보 아니냐구요? 2019년 기준, 농업 수출액 2위는 네덜란드(877억 달러)이며 1위가 바로 미국(1034억 달러)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중국(703억달러), 독일(651억달러), 브라일(461억달러), 스페인(440억달러), 프랑스(436억달러) 등이 뒤쫓고 있는 형국이지요. 반면 이 통계에서 한국의 농업수출액은 고작 75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중계무역으로 먹고 산다는 이미지가 붙어있는 소국인데,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엄청난 농업수출액을 기록할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나라가 IT산업이나 제조업에 치중하는 것처럼, 네덜란드도 국민 중 대다수가 농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쉽지만 틀렸습니다. 2019년 기준 네덜란드의 전업 농업종사자 수는 15만 6천명이며 인구비율로 따지면 0.9%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농업인구가 224.5만명이며 전체 인구 대비 농업인구 비율이 약 4.3%라는 점이나 프랑스(74.1만), 영국(46.6만), 독일(47.3만), 이탈리아(113만)의 농업인구수를 감안하면, 입이 돌아가도 네덜란드가 농업에 올인한다고 말할 수는 없죠. 농업 뿐만 아니라 농식품업 종사자까지 포함해봐도 네덜란드는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처럼 경지면적이 넓은가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1인당 농지면적은 0.06ha로 한국(0.03ha)의 두배이긴 하지만 프랑스(0.29ha)나 브라질(0.3ha) 같은 농업강국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로 좁기 때문입니다.
사실 네덜란드 농업수출액에는 몇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자유무역 노선을 유지함과 동시에 값싼 곡물을 들여와 축산업을 발전시키고 여기서 나오는 우유를 재료로 치즈 등 유가공 식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직접적인 곡물 생산은 농지가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에게 맡기고,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주력하는 노선을 취한 것이었죠. 이를 위해 네덜란드는 농식품업 클러스터의 상징인 바헤닝언 푸드밸리(Wageningen Food Valley)를 조성했으며 이곳은 농업 및 임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바헤닝언 대학을 중심으로 네슬레, 유니레버, 하이네켄, 몬산토 등 글로벌 식품 및 농약 회사들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IT산업 기술의 최첨단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있다면, 농업 기술의 최첨단에는 네덜란드의 바헤닝언 푸드밸리가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선진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네덜란드는 낙농업이나 축산물, 화훼, 과채에 특화하고 있으며 농업 주제에 높은 자본집약성을 띄고 있습니다. 즉 아무런 부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철광석, 석유 등 온갖 자원을 수입해 제품으로 가공한 뒤 해외에 수출하는 것처럼, 네덜란드도 원료가 되는 농산물을 수입한 후 이를 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특성 탓에 농업인구가 적고 농지면적이 좁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농업수출액을 달성할 수가 있으며, 국내 인구가 1700만명 정도로 적은 편이라는 점도 생산물량을 수출에 돌릴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더 많아지기 때문에 수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죠. 실제로 네덜란드의 대기업 중에는 식품 관련 기업이 많은 편인데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Heineken)이나 국내에서는 "크노르"라는 이름으로 국물용 스톡을 판매하고 있는 유니레버(Unilever), 세계 1위 치즈 생산업체인 프리슬란트캄피나(Friesland Campina)는 특히나 유명한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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