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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룩말은 가축화되지 않았을까?
아프리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백이면 백, 얼룩말이 무리를 짓고 단체로 질주하는 전경(全景)을 한번쯤은 담아내곤 합니다. 얼룩말은 아프리카 초식동물의 얼굴마담 격인 존재이니 우리에게는 꽤나 친숙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인간은 말을 탈 수 있어도 얼룩말은 못 탄다는 겁니다. 사실 얼룩말과 생김새적으로 말과 닮아있는 만큼 생물학적으로도 말에 매우 가까운 동물입니다. 얼룩말(zebra)과 말(horse)이 교미하면 교잡육종인 조스(Zorse)라는 동물이 태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을 다 한셈이죠. 그런데 어째서 말은 길들여졌으며 얼룩말은 길들여지지 않았을까요?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와 얼룩말이 함께한 세월이, 말과 함께한 세월보다 한참은 길텐데 어째서 얼룩말은 가축화되지 못한 걸까요?
사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얼룩말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룩말과 인간은 최소 수백만년 이상 아프리카에서 공존해오긴 했지만 그 관계는 절대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원시 인류에게 있어서, 얼룩말이란 사냥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인간이 얼룩말을 사냥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이 나오며, 이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수백만년 동안 지속되면서 결국 얼룩말의 본능에는 인간=위험이라는 도식이 각인되고 만 것이죠. 반면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인간이 말을 조교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5500년 경부터라고 하는데,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 사는 말 입장에서 인간은 위험한 사냥꾼이라기보다는 낯설고 이상한 동물 정도로 비춰졌을 겁니다. 그리고 이 낯선 동물이 맛있는 곡물을 주니까, 어라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하고 덥썩 가축화를 받아들인 것이었죠. 즉, 말의 본능에 인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나기 전에 말이 조교당한 것이죠.
또 얼룩말은 본능에 대한 이야기는 둘째치고 기본적으로 가축으로서 부적합한 심각한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격이었습니다. 얼룩말은 항상 사자나 치타, 하이에나 같은 포식동물에 의해 위협받는 생활을 보내왔기 때문에 투쟁 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 뼛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동물입니다. 말이든 얼룩말이든 궁지에 몰리게 되면 상대를 물어뜯거나 발로 걷어차는 건 예삿일이지만, 그 수준을 논한다면 얼룩말이 말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로 전투의욕이 훨씬 높으며 더 공격적입니다. 이런 특성 탓에 아프리카 동물원에서 사육사들을 가장 많이 부상입히는 동물은 다름아닌 얼룩말입니다.
게다가 성질머리는 둘째치고 체형적으로 얼룩말은 인간이 타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동물이 아닙니다. 말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가축화된 말에 비하면 얼룩말은 크기가 작은 편이며 등도 그다지 강인한 편은 아니라서 무거운 중량의 물체를 옮기는데는 약한 면모를 보입니다. 또 얼룩말은 머리가 말에 비해 굵은 편이라 고삐를 사용해 방향을 전달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얼룩말은 끈기가 없는 편이기에 조금이라도 지치면 지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사실 빅토리아 시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을 때 얼룩말을 조교한다는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그깟 말 한마리 조교 못하는 야만인이지만, 자기들 유럽 문명인은 엘레강스하게 얼룩말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이때 몇몇 성공적인 사례는 있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은 대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결국 얼룩말의 가축화가 완료되기보다도 먼저 자동차가 발명되었고 유럽인들은 얼룩말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얼룩말 대신 지프차가 아프리카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즉, 우월한 문명인이라고해도 얼룩말의 고약한 성질머리는 꺾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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