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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이슬란드 역사 : 초기 정착 시기
870년경 최초의 이주자인 잉골푸르 아르나르손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 후 "얼음의 땅"이라는 현재의 국명을 지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무인도였던 이 땅에 874년에 게르만족의 일파이자, 몹시 추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거주하던 노르드인들이 최초로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874년 이전에 아일랜드에서 온 선교사들이 살고 있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아이슬란드인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모계 유전자(Mtdna)의 62%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죠. 또 노르웨이로부터도 많은 이주민이 유입된 결과, 아이슬란드인의 부계 유전자는 약 75%정도가 노르웨이 서부 주민들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전 국토가 화산 대지인 데다가 날씨도 좋지 않은 외딴 섬이라 농사도 못 짓는 등 가져봤자 별 메리트가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르드인들의 출신지인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북극에서 매우 가까워서 상당히 추웠던지라, 아이슬란드 정도의 기후에는 상대적으로 적응하기 쉬웠습니다. 사실 그린란드조차 당시에는 기후가 꽤 따뜻한 편이어서 남부 지역에 목초지가 있었고, 그린란드 최북단(이자 지구상의 육지들 중 최북단)인 피어리랜드에도 이누이트 계통의 민족이 일부 살고 있기도 했습니다.
② 아이슬란드 역사 : 중세
아이슬란드는 930년에 의회(알팅그, Alþingi)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의회를 싱(thing)이라 불리었는데 과거에는 4개 지역이 있었고 지역마다 작은 의회가 있었습니다. 이걸 "1/4 의회"라고 불렀고 대의회를 "알싱"이라 불렀습니다. 즉, 아이슬란드는 의회의 구성원인 의원을 선거로 뽑는 제도가 최초로 나온 국가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이후 몇백년 동안이나 아일란드에서 살았고, 그린란드와 아메리카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기독교가 아이슬란드에 전래되었습니다.
12세기에 아이슬란드 문화가 융성해졌고, 그 후반기에 활동한 인물이 아이슬란드의 문학가이자 정치가인 스노리 스튀르들뤼손(Snorri Sturluson)이었습니다. 13세기부터 아이슬란드에서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동시기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굉장히 평화로운 편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내분 끝에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와 연합 조약을 체결하여, 노르웨이로부터 무역을 보호받고 치안을 유지시켜주는 조건으로 노르웨이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1387년부터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아이슬란드의 공용어도 법적으로는 덴마크어가 되었습니다.
1602년 덴마크는 아이슬란드가 덴마크 외의 국가와 무역하는 걸 금지했습니다. 더욱이 이때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랬듯 아이슬란드 또한 페스트 등으로 고생했죠. 그래도 같은 민족 취급을 해주기도 해서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는 온건한 지배를 받은 편이었습니다. 그 예로서, 17세기 중엽까진 아이슬란드는 독자적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1627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한패가 된 네덜란드 출신의 해적 얀 얀스존이 이끄는 바르바리 해적이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약탈을 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8세기에는 기후가 가장 추워졌을뿐더러 라카기가르 화산이 폭발하면서 가축의 3/4이 죽고 아이슬란드 인구의 1/4가량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③ 아이슬란드 역사 : 근대
덴마크 지배 시기 아이슬란드에서 의회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결국 1800년에는 의회가 폐지되고맙니다. 또 19세기에 들어서도 기후 조건은 계속 나빠져 아이슬란드인들이 캐나다로 대량으로 이민가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민족주의의 발흥은 바로 이때라고 합니다. 결국 아이슬란드 민족 운동의 영향으로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8세가 1843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의회를 부활시켰습니다. 1874년에는 아이슬란드인들의 자치권을 허용하는 제헌 헌법을 공포했고, 외국과의 무역도 허용되었습니다. 1918년에는 덴마크 왕이 아이슬란드 왕을 겸하는 아이슬란드 왕국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권 등은 여전히 덴마크가 쥐고 있었으므로, 겉만 독립국이지 실질적으로는 자치령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독일 해군이 대서양으로 진출하려하자, 위기를 느낀 영국은 북대서양의 전략적 요충지인 아이슬란드를 무혈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덴마크는 독일에, 아이슬란드는 연합군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아이슬란드에서 독립에 관한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고,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이것이 통과되어 왕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며, 1944년 6월 17일 아이슬란드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독립하게 됩니다.
웃기는 점은, 히틀러조차 이 당시에 아이슬란드 독립을 승인했었습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덴마크가 점령국 나치 독일에 매우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사실 덴마크인들은 독일의 보호령이었던 1943년까지는 저항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3년 후반에 독일이 덴마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직할 통치를 시작한 후에 저항이 늘어나기 시작했기에, 이에 대해 화가 났던 히틀러가 아이슬란드 독립을 승인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아이슬란드가 연합군의 점령 하에 놓여 있었던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독립 이후로도 연합군 측은 아이슬란드를 북대서양에서 독일 유보트를 감시하는 주요 거점으로 이용했습니다.
④ 아이슬란드 역사 : 현대
2차 세계 대전 직후, 전화에 휩싸였던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면 아이슬란드는 훨씬 상황이 나았습니다. 여전히 전형적인 어업・농업국가였기는 했지만, 수산 가공업을 시작으로 점차 2차산업과 3차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고, 70년대부터 지열을 이용한 알루미늄 제련업과 무역업을 육성하였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금융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소득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들 중 하나였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로는 금융업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어업과 관광업, 알루미늄 제련업을 바탕으로 아직까지도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NATO 회원국이지만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는 국가이기도한데, 군대 대신 특수 경찰과 해안 경비대로 방위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아이슬란드는 북해와 북극해에서 대서양으로 나오는 출구인 그린란드와 영국 사이에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아이슬란드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51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과 방위 협정을 맺고 미군에게 군사 기지를 제공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군의 잠수함을 감시하기 위한 음향감시체계 기지와 미군 항공 기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2006년 이후 미군은 철수한 상태지만 NATO 공군기가 주기적으로 순환 배치되어 아이슬란드 일대의 영공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와 가장 사이가 나쁜 국가로는 대표적으로 영국을 들 수 있습니다. 한랭 어종인 대구 어획을 둘러싸고 3차례(1958년, 1972년, 1976년)에 걸친 대구 전쟁(Cod Wars)을 벌였을 정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좀 작기는 했지만, 엄연히 포격전도 있었고 사상자도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NATO의 중재로 전면전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냉전 시기였고, 만약 아이슬란드가 소련 쪽으로 붙게되면 미국과 유럽을 잇는 북대서양항로가 위협받게 되거나 쿠바 미사일 위기가 유럽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대구 전쟁은 사실상 아이슬란드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간의 무분별한 남획 탓에 아이슬란드의 대구 자원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슬란드 사람은 기본적으로 영국인을 싫어하게 되었고, 이런 성향은 금융위기 당시 영국의 고액 예금자들을 아이슬란드의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에 반발하는 사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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