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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경제 ① 90년대까지의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절해고도라는 지리적 난점과 20만 내외에 불과했던 인구 탓에,  20세기 초까지만해도 사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이슬란드 경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오던 것은 어업이었으며, 독립 직후에도 1차산업 비중이 60%이상인 전형적인 어업 · 농업 국가였습니다. 게다가 아이슬란드는 워낙 소국이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해산물의 시장가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해마다의 어획량과 세계 해산물 시장 가격에 의해, 아이슬란드의 경제 성장이 결정되었지요. 

 

그러나 수산 가공업을 시작으로 점차 2차산업과 3차산업으로 방향을 전환, 1차산업의 비중은 1945년에는 35%, 1973년에는 13%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업은 여전히 중요한 수출 산업이었습니다. 또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아이슬란드 경제는 높은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950년의 1인당 GDP는 1,000달러에 달했으며, 독일・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주요 국가들을 추월했지요. 

 

아이슬란드의 1인당 GDP 추이(OECD Data)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도, 아이슬란드 경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높으면서도 변덕스러운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1945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평균 GDP성장률은 약 4%정도였습니다. 다른 지표들을 참고해보면, 아이슬란드의 경제성장은 산업화된 다른 국가들의 상황과는 별개로 움직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70년대부터 지열을 이용한 알루미늄 제련업과 무역업을 육성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천연자원에 기반한 경제구조가 세계 정세와는 동떨어진 아이슬란드의 경제 성장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이러한 불규칙성은 서비스 산업의 비중 확대, 수출품목의 다양화, 보다 타당한 경제 정책, 세계 경제에 대한 참여 증가 등의 요인에 의해, 20세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줄어들게 됩니다. 1964년에는 GATT, 1970년에는 EFTA에 차례로 가입하면서 관세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었고, 1994년에는 EEA에 가입하면서 스위스를 제외한 유럽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높은 성장률을 견지해갑니다. 그 결과, 고도성장을 경험하며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이슬란드 경제 ②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노력

전후 아이슬란드 경제 개발 시기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높은 인플레이션입니다. 1960년대까지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율은 10% 정도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기는 했지만, 경제 성장률 역시 높았던 탓에 충분히 상쇄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급증하기 시작했고, 1983년에 이르러서는 84%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것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양차 오일쇼크로, 극단적으로 높아진 원유가격에 의한 파급효과가, 주요 소비재・산업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고 평가됩니다. 

 

아이슬란드의 물가상승율 추이

 

아이슬란드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엄격한 통화 및 환율 정책과 소득 정책과 광범위한 구조적 개혁을 펼쳤고, 그로 인해 19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특징적인 구조적 개혁이 아이슬란드 경제와 자본 시장에 실시되었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규제완화와 세계 경제에 대한 참여도를 높여, 아이슬란드 경제 전체의 집단적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장 자유화 정책, 재정 정책, 민영화 및 다른 구조적 개혁들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들은 꽤나 신속했는데, 사실 아이슬란드는 1994년에 형성될 EEA 창립멤버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아이슬란드 국내의 법규나 규제 범위를 EU표준에 어느 정도 맞춰나갈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통화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은, 이자율에 대한 정부규제완화와 더불어 줄어들어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유행이 되었던 계획 경제 사상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많은 아이슬란드의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율화 조치는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이어졌고, 아이슬란드의 자본시장에는 경쟁이 늘어났으며, 은행들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 부문만큼은 여전히 정부가 소유했으며, 각종 공기업들이나 수입 규제 및 쿼터 제도에 의해 보호를 받는 농업만큼은 자율화 추세에 비껴갔습니다.

 

 아이슬란드 경제 ③ 아이슬란드 번영의 원동력, 금융업

2000년대 초반, 아이슬란드는 일시적인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국내 총생산(GDP)은 적었지만, 1인당GDP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2006년 기준 세계 5위)였으며, 국제경쟁력도 매우 높아 세계 4위이자 유럽 1위였습니다. 동시에 2005년까지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 어린아이를 포함한 전 국민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07년 UN이 실시한 설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국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이자율추이

이 시기 아이슬란드 경제 번영의 가장 큰 동력원은 금융이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아이슬란드 정부는 높은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한때 15%에 달하는 고금리 정책을 폈고, 동시에 금융규제를 대폭 풀었습니다. 특히 외환 규제를 크게 완화했으며,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고금리를 쫓아 많은 자금이 유럽 대륙으로부터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은 아이슬란드 내 기업들과 가계들이 비교적 싼 이자로 해외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게 했으며, 이들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인근 국가의 기업들을 인수하고, 자국의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등 경제를 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은행이 특히나 적극적이었는데, 해외에서 돈을 끌어들여서 국내보다 낮은 이자로 대출 장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해외자본을 최대한 끌어들입니다. 아이슬란드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Kaupþing banki hf)은 해외차입으로 1996년 이후 자산규모를 매년 2배씩 늘렸고, 다른 은행들도 곧바로 이것을 따라했습니다. 2003년도 시점까지만해도 아이슬란드 은행의 자산 규모는 수십억 달러였습니다. 이 금액은 2006년에는 1,400억 달러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아이슬란드 GDP대비 경제부문별 외부부채 변화


상업은행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은행들이 해외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국내시장에만 투사하기에는, 아이슬란드의 국내 시장은 너무 작아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영국・아일랜드・노르웨이 등으로 진출해 현지에 지점을 내거나 법인을 설치하는 등,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다시 해외에 투자하는 해괴한 짓을 하면서도, 브레이크 없는 성장을 구가해왔습니다. 

 

해외자본의 급격한 증가는 아이슬란드 화폐가치의 상대적 상승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달러 표시 경제 성장률을 극대화시키게 됩니다. 또한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품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 경제구조상, 자국 국민들이 직면하는 수입품의 가격을 하락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도 물가상승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도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 투자하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 4년 동안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9배 성장했으며, 수도인 레이캬비크의 부동산 가격은 3배가 되었으며, 동시에 아이슬란드 평균 가정의 자산도 3년 만에 3배가 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 경제 ④ 풍전등화의 아이슬란드

금융부문의 가파른 성장으로 아이슬란드의 주력산업은 기존의 어업에서, 금융과 부동산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994년 기준 금융산업 단독은 아이슬란드의 총 GDP에서 겨우 6%만을 차지했었지만, 2007년에는 GDP대비 11%로 성장하게 됩니다. 금융과 보험, 부동산 산업을 합치면 전체 GDP의 27.2%나 차지하고 있었죠. 이로 인해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7년 기준 68.0%로 가장 높아졌고, 다음으로 건설업(11.0%), 제조업(10.9%), 어업(4.4%) 순이었습니다. 이러한 급격하고도 대단한 산업 구조 전환은 겉보기에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끌게 됩니다. 게다가 정부의 재정 체질 또한 지극히 양호했으며, 1998년 이후 계속해서 흑자를 기록해왔습니다. 이렇듯 모두가 윈윈하게 되었으니, 아이슬란드 정부로서는 이러한 현상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인해버리고 말았습니다.

 

2007년 아이슬란드 GDP 분석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아이슬란드는 외국인직접투자의 급증, 민간소비 증가, 금융시장 개혁, 유연한 재정정책 등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만,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무역수지, 서비스 수지, 소득 수지 등이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무역구조상 경상수지 적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GDP대비 4.8% 적자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에는 무려 25%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자본수지 역시 2003년에는 유입과 유출이 약 3억달러 정도로 비슷했지만, 상업 은행들에 의해 해외투자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2007년에는 유입이 약 30억 달러, 유출이 약 121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당시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습니다. 3대 은행의 경우, 아이슬란드 국내신용기관의 총자산의 88%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영업실적이 곧 아이슬란드 경제실적이었습니다. 이 3개의 은행의 시가총액은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의 약 50%에 달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해외차입 규모는 아이슬란드 전체 GDP의 무려 10배 수준으로 늘어났고,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2007년 말 총자산은 11조3530억 크로나로 국가 GDP의 9배를 넘길 정도로 팽창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팽창한 아이슬란드 주요 상업은행의 자산 중 79%와 부채 85%가 외화였던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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