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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역사의 시작과 류큐 왕조 시대

11세기까지만해도, 류큐 열도에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대륙이나 일본 열도 등지에서 도래인 및 선진 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1~12세기 경으로, 이 때부터 오키나와에 농경문화가 정착됩니다. 다만, 오키나와는 논농사에 부적합한 석화암 지대가 많았기 때문에, 쌀은 귀한 편이었고 대신 고구마가 오키나와인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이후 구스쿠 시대, 삼산 시대를 거쳐, 1429년 류큐 왕국이 건설되었고, 중국・일본・조선・동남 아시아 국가들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며 번성하게 됩니다. 

 

특히, 류큐 왕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라 불리우는 3대 왕인 쇼신(尚真)의 시대 때는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었으며, 미야코 섬과 야에야마 섬 등의 사키지마 제도(先島諸島)를 정복하기도 합니다. 류큐 왕국은 명나라에 2년 1회 또는 1년 1회 조공을 바쳤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명나라와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 이를 통해 명나라,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잇는 동아시아 해상 중개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츠마 번의 침략과 그 이후

그러나 1609년 일본의 사츠마 번에 의해 침략당했고, 류큐 왕국은 사츠마 번의 속국이 되고 맙니다. 1872년, 류큐 왕국은 이른바 "류큐 처분"에 의해 일본 제국에 완전히 흡수 당했습니다. 이때 오키나와 현의 행정은 일본 본토 출신들로 독점당했고, 황민화 정책으로 오키나와의 고유한 문화를 탄압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근대화에도 관심이 없어서 낡은 제도를 거의 손대지 않는 구관온존책(旧慣温存策)을 유지하는 등, 기본적으로 오키나와를 식민지처럼 대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때는, 오키나와가 격전지가 되어버린 탓에 약 20만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민간인만 따지더라도 약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오키나와에 40만명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피해는 매우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종전 직후에는 미군 점령하에 놓이면서,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게 되었고, 2011년판 방위백서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18.7%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한국에서 미군이 하는 것처럼, 오키나와에서도 미군은 온갖 대민 범죄를 일삼고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인들의 주일미군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나쁜 편입니다. 게다가 기지 설립 과정에서도 억지로 땅을 빼앗거나, 헐값에 팔도록 강요하여 오키나와 주민들의 공분을 샀으며, 이렇게 오키나와의 많은 농지가 반 강제적으로 미군 기지로 징발당했습니다. 원래 오키나와는 전쟁 전까지만해도 농업과 어업과 같은 1차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군 기지로 인해 결국 경제적으로 미군에 의존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맙니다.


 오키나와 본토 복귀 이후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래,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의 사회 경제적 수준을 본토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오키나와 진흥 개발 계획을 수립・실시해왔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균 경제 성장률 6.1%를 기록하는 등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오키나와도 그 영향을 받아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인당 현민 소득은 일본 최하위로 일본 평균의 70% 수준에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사실 일본 정부가 지역 관광자원 개발, 대규모 리조트 단지 건설 등을 지원해오기는 했지만, 이러한 공공 공사의 절반 이상은 본토 기업들이 수주해가고 있으며, 오키나와에 대한 환원률은 낮은 편입니다. 또 관광 사업을 대신할 핵심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를 실시했던 IT산업 또한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개발의 하청이나 콜센터 업무에 불과하며, 그 결과 오키나와는 본토에 비해 훨씬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탓에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도 일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1차・2차 산업의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3차 산업 중에서도 관광업에만 극도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광객 숫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키나와 자체가 식재료 및 상품을 본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오키나와에 와서 소비하는 음식・상품 매출은 오키나와 내부에서 소화되지 않고, 본토 쪽으로 새어나가고 맙니다. 

그 결과, 관광객 숫자 만큼은 하와이조차 능가하고 있지만, 관광 수입은 3분의 1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관광업을 대체할만한 산업이 전무한 부분은 큰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관광업은 그 특성상 경기 변동에 대단히 취약한 산업인데, 이것에만 의존하다보니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과 같이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케이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키나와 경제 # 1 오키나와에 대한 기본 지식

오키나와 반환 이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를 경제 특구로 지정하며, 각종 세제 혜택 및 본격적인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기준, 1인당 소득은 227만3천엔으로 일본 내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고, 실업률도 일본에서 가장 높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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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경제 # 2 오키나와의 산업 구조

오키나와의 경제는 지역 특성상, 관광과 서비스업이 유독 발달한 형태로, 상대적으로 1차산업과 2차 산업의 비중은 적은 편입니다. 하와이와 비슷하게 관광 이외에는 이렇다할 사업은 없는 편이며, 그 대신 주일 미군 기지에 의한 경제 효과가 있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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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경제 # 3 오키나와 경제의 역사적 배경

오키나와에서는 쇼신(尚真)의 시대 때는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었으며, 명나라와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 이를 통해 명나라,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잇는 동아시아 해상 중개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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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경제 # 4 한국 경제와의 유사성

오키나와의 관광 수입이 도리어 본토 쪽으로 새어나가는, 소쿠리 경제(ザル経済)라는 말은, 수출로 얻는 실질적인 이익을 대부분 일본에 뺏기는 대한민국의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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