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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
정식 명칭 |
제1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第1次沖縄振興開発計画) |
기간 |
1972년 ~ 1981년 (10년간) |
목적 |
- 본토와의 격차를 빠르게 시정 |
핵심 내용 |
- 사회자본의 정리 |
결과
수자원 및 에너지 확보, 사회복지・의료 부문을 제외한, 전반적인 사회자본 정비는 큰 진전을 보였습니다. 미군 기지에 대한 의존도도 상당히 개선되었고, 현내 총생산 및 1인당 현민 소득 크게 늘렸고, 본토와의 경제적 격차도 상당 부분 줄이는 데 전부 성공했습니다. 다만, 2차 산업을 진흥하려던 당초의 목표와는 달리, 제조업 분야는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습니다.
1차 계획을 면밀히 살펴보면, 오키나와가 본토에 비해 임금이 낮다는 부분에 주목하여, 노동집약형 공업을 육성하겠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하는 이 1972년 시점은, 산업화의 후발 주자였던 한국조차도 중화학 공업 진흥을 주장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즉,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형 공업을 일본에서 육성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가령 저임금을 살려 노동집약형 공업을 육성해도, 오키나와의 경제가 성장해 본토 수준에 근접해버리면, 임금 수준도 본토 수준으로 상승하기에, 공을 들여 육성해놓은 공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노동집약형 공업의 육성은 "본토와의 경제적 격차를 빠르게 시정"하겠다는 1차 계획의 목표와, 애초부터 모순되는 부분이었던 겁니다.
제 2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
정식 명칭 |
제2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第2次沖縄振興開発計画) |
기간 |
1982년 ~ 1991년 (10년간) |
목적 |
- 본토와의 격차를 빠르게 시정 |
핵심 내용 |
- 물적 생산 부문 강화와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산업 진흥 |
결과
1차 개발에서 미흡했었던 수자원 및 에너지 확보, 사회복지・의료 부문 등의 사회 자본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관광업도 상당한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우선적인 목표였던 2차 산업 진흥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이 계획부터는 노동집약형 제조업을 거론했던 1차 계획에서 벗어나,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진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조업의 어느 분야를 집중 육성해나갈 것이냐에 대한 구체성이 없었다는 겁니다.
전후 일본의 경제 발전 모델은, 민간 기업들간의 경쟁을 촉진해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는 상당한 성과를 거둬, 오키나와 진흥개발 계획이 입안된 시점에서 이미 일본 경제의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이렇게 높은 성과를 보인 자신들의 경제 발전 모델에 심취한 나머지, 전후 일본 경제의 특수성과 오키나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본토의 민간 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아무런 반성 없이 일방적으로 오키나와에 적용하게 됩니다.
사회 간접 자본만 정비해주면, 개별 산업은 민간 경쟁을 통해 저절로 육성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1차 계획에서 2차 계획에 이르기까지 2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뻘짓을 해온 결과, 공들여왔던 제조업은 거의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제조업은 대단히 복잡 다단한 협력 사슬을 필요로 하는 관계로, 그 진흥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가 담보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자체 인구가 적다보니, 오키나와의 수요만으로는 이것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규모 확대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본토 기업들과 경쟁해야만 했는데, 이 시점의 일본 본토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터라,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정책 측면에서 "민간 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고수하던 터라, 정부의 강력한 보호도 받지 못했죠. 이렇게 2차 산업이 제대로 크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키나와는 버블 경제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 3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
정식 명칭 |
제3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第3次沖縄振興開発計画) |
기간 |
1992년 ~ 2001년 (10년간) |
목적 |
- 자립적 발전의 기초 조건을 정비 |
핵심 내용 |
- 산업기반 정비를 통한 제조업 경쟁력 제고 |
결과
3차 계획에 이르러서도, 앞선 1차와 2차 계획에서 오키나와의 제조업이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것이, 산업 기반 정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석유제품을 제외한 제조업 출하액은, 1992년에 4,550억엔으로 정점을 찍은 후 97년 4,440억엔, 2002년 4,080억엔 등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오게 됩니다.
또한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완전히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서, 오키나와의 경제 성장도 크게 둔화되고 맙니다. 결정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규모 및 경쟁력이 일본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게 되면서, 오키나와에서 제조업을 집중 육성할 여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반면, 관광업의 경우 여전히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의 방문 관광객 수 및 관광 수입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게 됩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내에서도 특이한 아열대・해양성 기후 지대이며, 풍요로운 자연 환경,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 등 훌륭한 관광 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광업에 있어서는 비교 우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관광 산업 자체의 파급효과는 제조업에 비하면 약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입되는 단위당 비용에 비해 산출되는 이익이 높다는 점. 오키나와의 자연환경이 지닌 관광업의 비교우위성, 국제 분업화에 의한 제조업 육성 동기 상실, 일본 경제 침체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오키나와는 결국 제조업을 육성하여 3차 산업에 편향되었던 경제구조를 바꾸겠다는 당초의 방침을 바꾸게 됩니다.
제 4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
정식 명칭 |
오키나와 진흥계획(沖縄振興計画) |
기간 |
2002년 ~ 2011년 (10년간) |
목적 |
- 자립적 발전의 기초 조건을 정비 |
핵심 내용 |
- 관광・리조트 산업, IT산업에 대한 전략적인 진흥 |
결과
2000년대의 일본 경제는 아직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 가 큰 타격을 입었기에, 오키나와의 현내총생산도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현민 소득도 지지부진하고 있었던 반면, 인구만은 경제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가했기에, 결과적으로 1인당 현민 소득은 과거에 비해 악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4차 계획을 기점으로 제조업 중심 성장 전략에서, 관광업으로부터의 파급 효과를 노리는 전략으로 선회한 결과, 일반 제조업 중 범용기계 산업과 요업 및 시멘트 산업이 위축되고, 그 결과 오키나와의 제조업은 크게 축소되고 맙니다. 이 시점까지는 아직 관광업으로부터의 시너지 효과가 크게 발휘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진흥책으로 인해, 오키나와의 IT산업은 큰 진전을 보이게 됩니다. IT산업은 제조업과는 달리, 지리적 조건에 의한 제약이 훨씬 적은 편이고, 현 측도 법인세를 크게 인하받을 수 있는 정보통신산업특구지구를 설치하는 등 확실한 유인동기를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콜센터 근무인원이 전체 고용자수 중 과반수가 넘었고, 다른 IT기업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 하청 정도에 불과해, 고부가가치 산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창출효과는 확실히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 5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
정식 명칭 |
오키나와 21세기 비전 기본계획(沖縄21世紀ビジョン基本計画) |
기간 |
2012년 ~ 2021년 (10년간) |
목적 |
- 경제 정세를 고려한 자립형 발전의 기초조건을 정비 |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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