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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오키나와 개발 계획과 그 결과

 

정식 명칭

제1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第1次沖縄振興開発計画)

기간

1972년 ~ 1981년 (10년간)

목적

- 본토와의 격차를 빠르게 시정
- 자립적 발전의 기초 조건을 정비

 

 배경

과거 류큐 왕국으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며 번성하던 오키나와는 1609년 사츠마 번에 의한 침략과 1872년의 "류큐 처분"에 의해 일본으로 완전히 흡수되고 맙니다. 그 후 태평양 전쟁에서 총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는 등 매우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오키나와는 약 27년간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전쟁 전까지만해도 오키나와는 1차 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쟁 후에는 미군 기지에 의존하는 기지형 경제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반면 일본 본토측은 고도 성장을 달성하게 되면서, 본토와 오키나와 간의 인프라 등의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맙니다. 제 1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은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기점으로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시책이었습니다.

 

 

 

 경제 측면의 핵심 내용

(1) 사회자본의 정리

주택, 공원 등 생활 환경 시설을 시작으로, 발전이 더디었던 사회자본의 정비를 적극적으로 추진. 
- 공항, 항만, 도로, 전신전화 등 교통통신체계를 정비한다 
- 수자원 및 에너지를 시급히 개발확보한다. 
- 본섬 중남부의 도시권을 정비함과 동시에, 국제적인 공항, 항만을 정비한다.

[결과: 전반적인 사회자본 정비는 크게 진전됨. 다만 1차 계획 완료 시점에서, 수자원 및 에너지 확보 및 사회복지・보건 의료 부문은 아직 미흡했다고 평가됨.]

 

 

(2) 산업의 진흥개발 
과도하게 3차산업에 편향된 오키나와의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기지의존형 경제로부터 벗어난 자립형 경제 구축

- 미군 시설・구역의 정리 축소를 꾀하며, 그 노지 및 노시설을 산업 진흥 및 사회자본 정비를 위해 활용 
- 노동집약형 공업이나 공항 인접 산업의 입지를 촉진

[결과: 현민소득의 기지관련 수입 비중이 1972년의 15.5%에서, 1982년에는 7.1%까지 감소. 미군 기지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부분 개선. 그러나 미군 시설・구역의 정리 축소는 진전되지 않았고, 3차 산업에 대한 편중은 도리어 심화]

 

 

 

 제 1차 오키나와 진흥개발계획의 당초 전망

(1) 현내 총생산 규모 확대 
1971년 3,100억엔 → 1981년 1조엔을 목표 

[1981년 기준, 1조 4,442억엔을 기록. 목표치를 초과 달성]

 

(2) 1인당 현민 소득 개선 
1971년 33만엔 → 1981년 99만엔 이상을 목표

[1981년 기준, 129만엔 기록. 목표 달성]

(3) 본토와의 경제적 격차 해소 

1972년 기준, 오키나와의 1인당 현민소득은 본토 평균의 58.1%

[1981년 기준, 본토 평균의 70.8%. 개선 성공]

 

(4) 산업 구조를 이하와 같이 개선 
1차산업 비중 8% → 5%로 감소        [6%로 감소, 성공]
2차산업 비중 18% → 30%로 증가  [22%로 증가, 성공]
3차산업 비중 74% → 65%로 감소  [75%로 증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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