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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자체 기술력에 힘입어 점유율을 늘려가던 한국 조선업계는,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저렴한 인건비와 자재를 무기로 공격적인 저가 전략을 펼치는 중국 조선업체들에 의해 위기를 맞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술력에 있어서는 일본에게,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뒤져있었기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세계 조선 시장에서의 한국 수주점유율은 37.3%로 전년도에 이어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33.8%, 일본은 13.0%입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수주잔량의 60% 이상이 자국 발주량이며, 부가가치가 적은 벌크선종으로 채워져 있어, 대부분의 물량을 수출하며, 고부가가치 선종에 집중하는 한국의 조선업과는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또 일본의 경우, 일본산 선박에 익숙한 자국 선주들이 주고객으로, 약 50%이상의 수주물량이 내수로 채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역 샌드위치"가 가능했을까요?

 

1. 초기의 한국 조선산업

2.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요인

3. 현재 한국 조선업계 약진의 이유

4. 결론 및 정리

 

 

 

1. 초기의 한국 조선산업

 

조선 산업 자체가 대단히 자본・노동・기술집약적인 산업인데다, 시장 불확실성이 상당히 큰 산업입니다. 따라서 조선산업을 육성하는데 있어, 먼저 정부의 지원은 필수불가결하며, 실제로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을 보면 모두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한국이 특수한 사례인 이유는, 조선산업의 수요자가 되는 해운산업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전술한 나라들은 자국내의 강력한 해운산업이 뒷바침되어 있어, 국내수요만으로도 조선산업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내 수요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한 수출을 통해 조선산업을 발달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70년대 부터, 한국 정부는 강력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통해, 조선산업을 진흥시키기 시작합니다. 재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조선산업을 할당하고, 적극적인 수출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따라서 혹자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 덕분에 한국의 조선산업이 일본을 넘어섰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간과한 주장입니다. 먼저 조선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보조금 정책을 실시하는 것 일반적인 상식으로, 일본의 경우 이미 60년대 초반부터 신규 건조와 관련된 이자보조금 제도를 포함한 일본 해운집약 정책을 시행해왔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실시한 보조금 정책이, 경쟁우위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는 믿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경제 체급차이도 있습니다. 1970년 당시, 한국의 GDP는 $8,936M이었고, 일본의 경우 $209,071M으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약 23.4배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9년 시점의 한국에 이 체급 차이를 빗대어보면, 한국($1,629,532M$)과 미얀마($65,994M) 수준입니다. 미얀마 정부가 갑자기 수출보조금 및 산업진흥책을 사용하며 조선산업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하고, 조선산업 세계 1위를 하겠다고 주장하면, 현재의 세계 탑클래스 조선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코웃음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일본 조선사들도 1970년, 똑같이 코웃음쳤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1970년대 후반, 건조량 기준 세계 제 2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1973년 석유파동을 기점으로 조선불황의 시기에 접어들자, 세계 각지의 조선소들은 시설 감축을 실시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조선소를 잇따라 준공한 한국은, 조선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자 공격적인 영업으로 대규모 수주를 따냈고, 이를 바탕으로 건조량 세계 2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일시적으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한국 조선 사업의 성장요인

 
- 재벌간 경쟁 (자본집약적 요소)

일단, 상기한 대로, 정부에 의한 조선산업 육성 정책이 초기에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대까지 경공업 위주로 성장해온 재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조선산업을 하도록 시킵니다. 그런데 재벌 하나에게만 조선산업을 집중 할당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재벌들을 동시에 조선산업에 참여시킨 점입니다. 이렇게 여러 재벌기업들이 시장에 참여하니,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경쟁이 발생했고, 이러한 경쟁이 시설능력 확충을 위한 재투자를 유발.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한국 조선업의 경쟁우위요소 중 하나인 대규모 설비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 자체 조선기술 개발 (기술집약적 요소)

명백히 한국은 조선산업에 있어 후발국이었고, 따라서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산업같은 다른 산업들처럼, 초기에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을 노렸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직접 일본에 자본 및 기술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일본은 기존 토대가 전혀 없는 한국이 대형 조선소를 한번에 건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근거로 거부합니다. 대신 한국은 당시 세계 조선시장에서 일본세력에 밀려, 조선산업을 정리하고 있던 유럽으로부터 기술도입을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기술독점의 이익이 상실될 것을 우려한 일부 일본 기업이, 한국 조선업체 하청화와 로열티 수입, 주요 선박기자재 매출을 위해 한국에 대한 기술 이전을 결정. 이에 따라 한국의 조선산업 초기에는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기술이 공존했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정부에서 설립한 선박연구소나, 선진 기술을 소화하기 위한 각 기업들의 자주적인 노력 등으로, 한국은 자체 조선기술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더불어 1980년대, 조선업이 축소될 것이라 예측한 일본 조선업계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였고, 한국측은 정리해고된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술력을 일본과 동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 조선인력 양성 (노동집약적 요소)

한국 조선산업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가, 국가 주도적으로 적극적인 조선 인력 양성을 실시해나갔다는 점입니다. 해방직후 제대로된 조선소도 없었던 시기인 1946년에, 서울대학교에 조선항공학과가 신설되었으며, 1950년대에는 주요 국립대학교에 조선해양공학과가 설립되어 관련 기술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하는 등, 상당히 이른 시점부터 인재 육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권 국가들은 조선 전문 인력 육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일본 역시 1980년대에 이르자 선박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 예측해 조선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설계·연구인력을 감축하게 되었습니다. 동경대 등 일본의 대학교들은 차례로 조선학과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한국은 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배출된 조선 인력을 바탕으로, 기술인력 확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현재 한국 조선업체 경쟁력에 직결되고 있습니다.

 

 

 

3. 현재 한국 조선업계 약진의 이유

 

VS 중국 조선산업

1990년대 중국 경제 개혁개방 이후, 전체적인 중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중국 국내에서의 막대한 내수해운 수요가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 조선산업도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기 시작하여, 90년대 말에는 약 7%의 점유율을 차지하게 됩니다. 2000년대부터는 중국의 조선산업 육성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업에 대한 투자장려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2008년, 선박 수주량 세계 1위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기한 투자장려책은, 중국 내 조선설비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유인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정부는 금융위기 직후에도 수많은 조선소들을 대부분 지원하였고, 이것은 중국 조선소들의 설비과잉을 유발함과 동시에 국제 경쟁력 향상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2010년 중반부터는 이르자 중국 업체들의 품질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중국 조선 산업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중국 조선사들은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저가수주 전략으로 수주를 따냈지만, 기술적 결함에 의한 품질불량에, 납기일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례가 생기면서, 중국 조선사에 대한 세계 시장의 신뢰도가 추락해버렸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주요 보험회사들이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에 관련된 보험료를 줄줄이 인상시켜 바람에, 중국산 선박의 비용리스크가 커져버렸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중국의 인건비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저가 전략을 취해오던 중국 조선사들의 재무구조도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2009년에는 396개이던 중국의 조선사 수는, 2018년말 기준 110개로 급감해버렸습니다. 중국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연속해서 전세계 선박 수주 1위를 차지했었지만, 수주 실적이 악화되어 2018년부터는 한국에 선박 수주 1위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VS 일본 조선산업

일본의 경우, 1950년대에 유럽세력을 물리치고 건조량 세계 1위를 달성한 이래로, 1980년대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유지해왔습니다. 특히 고부가가치선인 LNG탱커의 경우, 아시아 최초로「가와사키 중공업(川崎重工業)」이 건조한 선종으로, 1970~1990년대까지 일본의 독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한국 조선업체들의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고부가가치 선종에서도 일본 업체들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자, 한국이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저임금 전략으로 일본 업체를 가격경쟁력에서 압도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2018년 기준 한국 3대 조선사의 평균임금이 6,850만원으로, 일본 조선업계의 평균임금인 600만엔을 고려해보면, 기이하게도 인건비는 오히려 한국이 더 높은 형국입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생산성에 있으며, 이것은 조선업계의 특이성에 기인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선업은 기본적으로 설계, 생산 및 관리 기술 외에 첨단 기술이 필수적인 기술집약적인 산업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양한 건조공정과 대형 구조물 제작에 따른 자동화의 한계에 의해, 대규모 기술・기능 인력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숙련공의 확보가 생산성에 직결됩니다. 한국 3대 조선사들은 정부의 중공업 육성 정책 시류에 맞물려, 90년대까지 조선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조선업의 시류를 잘못 예측하여 1980년대에 조선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되었고, 구조조정을 실시했기에 이것이 숙련 기능공의 확보를 저해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일본 조선업계의 대규모 통합 및 재편은 이러한 숙련공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측은 연간 10~20척의 LNG선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주한 선박을 연속으로 건조함에 따라, 기능공의 숙련도를 보다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생산성에서 경쟁국인 일본을 압도할 수 있었고, 품질 면에서는 일본과 대등, 가격경쟁력에서 일본을 압도하게 됩니다.

 

 

 

4. 결론 및 정리

 

정리하자면, 한국은 여러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 조선산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국가 경제 규모도 협소했고, 기반이 되는 해운산업은 거의 전무했으며, 기술 수준으로도 명백히 후진국이었습니다. 조선산업의 특성상 건축, 기계, 전기 등 다양한 방면의 기반 기술이 필요한데, 이런 것도 뒷바침되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초기단계에는 정부 주도적인 산업육성 정책으로 기반을 마련하였고, 복수의 재벌을 참가시켜 그들간의 경쟁을 유발했습니다. 내수 해운산업의 협소함으로 인해, 초기부터 국제경쟁을 시작했기에, 품질 및 기술 혁신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또 한국이 조선산업을 시작한 시점이, 세계 조선업계의 흐름이 유럽->일본으로 전환되는 타이밍이었기에, 비교적 손쉽게 유럽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의 일본 조선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이로서 개선된 기술력・생산능력을 통해 2000년대 초반 세계 조선시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점유율 1위를 내주게 되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품질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중국 조선사들이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한국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종에서조차 품질・기술력을 세계정상급까지 끌어올리면서, 품질에서는 중국업체들을, 가격경쟁력에서 일본 조선업계를 압살하며 다시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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