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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오션에 후발 주자로 뛰어든 주제에,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있다!?

레드 오션(Red ocean)이란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포화상태가 된 시장 및 산업을 의미합니다. 경쟁자도 별로 없고 평화로운 편인 블루 오션(Blue ocean)과는 달리, 레드 오션에서는 시장 진입은 어찌어찌 가능해도 기존 사업자의 노골적인 견제 행위와 소비자들의 경로 의존성 때문에, 점유율을 확보하고 사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듭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발주자로 진입한 기업이 레드오션에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며, 심지어 시장을 장악하고 점유율 1위로 올라선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죠. 그러나 이례적인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시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레드오션을 이겨낼 만큼 막강한 내부역량을 갖출 수만 있다면 불가능은 아니니까요. 그 산 증인 중 하나가 바로 신테크(Shintech Incorporated)라는 기업입니다. 

신테크는 한국 기업이 아닙니다. 신테크는 일본 대기업 중 하나인 신에츠 화학 공업(信越化学工業)의 자회사 중 하나로, 염화비닐 제조업에 주력하는 회사이며 모기업은 일본이지만 신테크는 미국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일본 기업 특유의 기술력 우위로 레드오션을 돌파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틀렸습니다. 염화비닐은 폴리염화 비닐(Polyvinyl chloride, PVC)이라고도 하며, 우리 일상 생활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플라스틱 중 하나입니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비닐봉투할 때 그 비닐이며, 그 외에도 파이프, 전기절연체, 레코드판, 수도관, 시트, 핸드백 등 엄청난 바리에이션의 활용도를 갖추고 있는 플라스틱이죠. 그런데 염화비닐을 만드는 PVC는 범용 수지이기 때문에, 생산 장비만 갖춘다면 어느 회사가 만들어도 제품차는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PVC 파이프

극단적으로 말하면 약간의 생산 지식만 있다면, 일반 가정집에서도 설비와 재료만 갖추면 충분히 염화비닐 제조가 어느 정도 가능할 지경입니다. 이렇다보니 일본 기업의 장기인 기술력이 활약하기가 힘든 사업분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신에츠 화학 공업은 오일쇼크가 전세계를 강타하던 1973년 미국에 신테크를 설립한 것이었죠. 초기에는 미국 최대의 염화비닐 파이프 제조업체인 로빈텍과 합동으로 투자한 합작 회사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도중에 로빈텍 측이 자본 철수를 감행하게 되었기에 1976년 신에츠 화학공업은 신테크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의 신테크는 미국 염화비닐 산업이라는 레드오션에 가장 후발로 진입한 상태였습니다. 생산량도 연간 10만톤 정도 규모였는데 이는 미국 염화비닐 제조업체 중 13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그 후 공장가동률을 끌어올려 고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안정화시키고, 판매처 확보를 위해 영업 및 고객사 개척에 매진하면서 사업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또 장기적인 안정 공급을 위해 원료부터 시작하는 일관 생산 체제를 갖추었고, 생산설비 증설 역시 꾸준히 거듭하여 생산량을 증가시킨 결과, 1990년에 이르면 미국 염화 비닐 생산량 중 20%를 점유하면서 미국 최대의 염화 비닐 제조업체로 등극했습니다. 현 시점에서조차 신테크는 세계 최대의 염화 비닐 제조업체이며, 미국의 2위와 3위 제조업체의 생산 능력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생산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자회사에, 그것도 후발주자로 사업을 시작했던 신테크가, 대체 어떻게 이런 세계적인 회사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요?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신테크 공장

그 비밀은, 철저한 소수정예제도에 있었습니다. 레드오션이었던 1970년대 미국 염화비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테크는 비용절감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인력관리가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파악했습니다. 그리하여 영업 담당자를 포함해 전직원을 필요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사업을 운용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전략을 선택했고, 이를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신테크의 회계 및 재무 직원은 단 2명 뿐이고, 공장장은 인사・구매・총무 등의 업무를 혼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 탓에 신테크는 "처음부터 구조조정된 기업"이라고 평가될 만큼, 최소한의 구조와 인원만으로 운용되고 있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특성이야말로, 염화비닐이라는 지옥같은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대의 요인이 됩니다. 

위에서도 약간 이야기했듯, 신테크의 주력사업인 염화 비닐은 진입장벽이 대단히 낮은 제품입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타사가 침투해올 수 있고, 쉽게 공급 과잉이 초래되어 불황이 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황이 오면 여러 미국 회사들이 먼저 인력감축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품질 저하와 생산효율 감소가 동반되고 맙니다. 그래서 여러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파산하거나 기업규모가 쪼그라들고 말죠. 반면, 신테크는 이미 필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사업이 운용되고 있는 특성이 있으니, 불황이 오더라도 구조조정 자체가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이로 인한 품질 저하나 생산효율 감소도 없습니다. 즉, 기업 자체가 이미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에 대단히 유리한 셈이죠.

또한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염화비닐의 특성상 수요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습니다. 제조 과정에서 환경 부하도 다른 석유화학 제품에 비해 적은 편이고, 물성, 가공성, 경제성이 워낙 뛰어난 소재인지라, 장기적으로 수요가 커질지언정 감소할 일은 거의 없죠. 이런 까닭에 파산한 기업들로 인해 공급과잉이 증발하면, 시장 상황은 다시 나아지고 성장할 여지 역시 생기게 됩니다. 신테크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기업규모를 꾸준히 키워온 것이었으며, 동시에 같은 이유로 세계 최대의 염화비닐 제조업체로 등극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신테크는 여전히 소수 정예주의를 계속해서 관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테크는 모회사인 신에츠 화학 공업의 전체 매출액의 1/3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종업원 수는 고작 550명에 불과합니다. 신에츠 화학 공업은 2021년 4월 16일 기준, 79,145.10억엔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일본 12위를 달리는 화학분야 대기업 중 하나인데, 인력규모만 놓고 보면 중소기업 수준인 자회사가 이런 대기업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기준, 신테크가 담당하고 있는 신에츠 그룹의 염화비닐 산업은 매출액은 4725.47억엔, 영업이익은 970.51억엔입니다. 1인당 영업이익으로는 무려 1.76억엔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1인당 영업이익 1위인 HMM(6.46억원)의 3배에 가까운 수준이며, 삼성전자(3.29억원)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종업원 숫자가 적다고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절대로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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